전문가들은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예금부분보장제를 시행할 경우 자칫 의약분업사태와 같은 혼란이 재연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좀 더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정부는 다음주까지 예금부분보장제 내용을 결정하기 위해 금융발전심의위원회를 5일 개최하기로 했다.
▽예금 부분보장제의 전제 조건〓90년초 금융위기를 겪었던 북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는 금융위기에서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액예금보장제를 도입했다가 각각 96년7월과 98년 12월 부분보장제로 전환했다. 이들 국가는 우리나라와 달리 부분보장제 전환 시기를 명시하지 않고 사전 조건이 충족된 이후에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예금 부분 보장제를 도입하기 위해 내건 4가지 전제조건으로 경제성장률과 물가 등 거시경제 환경이 좋아야 하며 무엇보다 금융구조조정이 완료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국민에게 충분히 홍보가 이뤄져야 하며 예금자들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시장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는 것.
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이런 조건을 완전히 갖췄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며 “조건보다 시행시기를 무조건적으로 못박은 것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준비가 끝났나〓이헌재(李憲宰)전재정경제부장관은 “99년은 합병 청산 등을 통한 하드웨어적인 구조조정, 2000년에는 금융과 기업의 내부 시스템을 고치는 소프트웨어적인 구조조정을 완료한 뒤 구조조정의 결정판인 예금부분보장제를 2001년에 도입하겠다”는 청사진을 누차 밝혀왔다.
그러나 현실은 청사진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이 사실. 대우사태와 현대 유동성 위기 및 잇단 해외매각 실패로 인해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으며 특히 신용협동조합과 같은 제2금융권의 구조조정은 시작하지도 못한 상태다.
한양대 이상빈(李商彬)교수는 “일부에선 예금부분보장제가 시장에 의한 금융개혁을 촉진할 것으로 보지만 아직 우리는 금융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예금부분보장제를 시행하면 돈은 소매금융 전문 은행으로만 몰려 신용경색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예금자들이 금융기관의 우열을 구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느냐도 의문이다.
진념(陳稔)재경부장관은 이 부분을 의식해 “내년부터 금융기관들이 분기별로 주요 수익지표를 공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시행 이전에 이미 이 같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지적.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예금부분보장제 시행으로 인해 받게 될 금융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실시를 연기하거나 예금보호한도를 상향조정하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재경부 이종구(李鍾九)금융정책국장은 “여러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많지만 예금부분보장제가 오히려 정상적인 것이며 정책신뢰측면에서 내년부터 시행이 불가피하다”며 “예금부분보장제로 오히려 구조조정이 촉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경준·박현진기자>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