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MOU 체결 당시 외자가 곧 들어올 것 같던 분위기와 달리 지금은 ‘정부가 거들어 주지 않으면 투자를 못하겠다’며배짱을 내미는 게 AIG측 입장.
정부는 이미 끝난 계약을 AIG가 다시 거론하고 나서자 민간기업에 특혜성자금을 줄 수 없다는 방침이어서 현대 금융회사의 외자유치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연리3%로 2조5000억원 지원 요청〓현대증권 현대투신증권 현대투신운용 등에 1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AIG 컨소시엄측은 실사작업을 하던 중 한남투신 인수건을 문제 삼고 나섰다. 98년 현대측이 부도난 한남투신 인수과정에서 발생한 손실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AIG 실사팀은 당시 현대가 금융감독원과 맺은 계약이 터무니없이 불평등하다며 정부에 손실 추가보전을 요구했다.
AIG측은 현대 금융회사 투자조건으로 정부가 2조5000억원의 자금지원을 연3%에 2008년까지 연장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투신증권은 한남투신의 부실한 신탁재산을 인수하면서 장부가격과 실제 펀드가격간 차이로 6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정부는 이를 메워주기 위해 연6%짜리 증권금융채권을 2조5000억원어치 빌려줬다. AIG가 요구하는 것은 당초 2003년까지 사용하기로 한 이 자금을 5년더 연장해 2008년까지로 늘리고 이율도 연6%에서 연3%로 크게 낮춰달라는 것.
▽한남투신 인수 후유증 문제 제기〓AIG그룹측이 이처럼 정부를 다그치는 것은 98년 계약자체가 현대측에 너무 불리하게 작성됐다고 보기 때문.
AIG측은당시 현대의 뜻과는 달리 정부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계약이었다며 추가 손실보전이 뒤따라야 투자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측은 “한남투신 인수당시 이헌재(李憲宰) 당시 금감위원장이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과 정몽헌(鄭夢憲) 그룹회장을 급히 불러 인수를 종용했으며 김대통령의 광주방문을 앞두고 정치논리가 작용해 계약이 불리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인수할 마음이 없는데도 청와대와 금감위가 앞장서서 현대에 떠넘겼다는 설명이다.
▽정부, ‘공적자금 안 된다’ 입장〓AIG측 요구에 대해 재경부와 금감위 관계자는 일단“요청이 들어온 적이 없고 전해들은 바도 없다”고 말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현대 금융회사는 한투 대투와 달리 민간기업이므로 설령 AIG가 공식요청한다 해도 정부가 자금지원을 할 입장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금감위에서도 “한남투신 문제는 이미 98년에 계약자체가 끝난 것”이라며 “지금 와서 인수조건으로 자금지원을 내세우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현대가 금융그룹 경영권을AIG측에 내주면서도 이처럼 불리한 조건으로 외자유치를 하는 것에 대해 ‘이면계약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