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車 매각협상]칼자루 쥔 GM "뜻대로"

  • 입력 2000년 10월 9일 20시 13분


제너럴모터스(GM)―피아트 컨소시엄과 채권단간 대우자동차 매각협상이 시작됐지만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여러 후보를 선정해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가 없는 단독협상이라 칼자루를 쥐고 있는 GM측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 GM의 인수의향서(LOI) 제출 사실이 매각창구인 산업은행이 아니라 정부측에서 흘러나오는 등 ‘사공’이 많은 것도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하리라는 전망이다.

▽협상 일정〓일단 GM―피아트 컨소시엄은 채권단과 (예비)협상을 벌이는 한편 대우자동차 등 매각대상 국내외 법인에 대한 예비실사를 벌인다. 과연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훑어보는 것. 대우차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4주 정도면 예비실사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비실사가 끝나면 매각의사가 있는 당사자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는 양해각서(MOU)를 맺는 것이 관례. 이후 다시 정밀실사를 거쳐 구속력 있는 본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산업은행 최익종(崔益鍾)대우전담팀장은 “9일부터 시작된 협상 결과에 따라 양해각서 체결을 생략하고 곧바로 본계약을 할 수도 있다”면서도 “GM측은 협상일정에 대해 아직까지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일괄인수 가능할까〓GM은 일단 일괄인수 의사를 밝혔지만 대우차 대우자동차판매 쌍용자동차 대우캐피탈 및 대우통신 보령공장 등 국내 5개 법인과 해외 36개 법인을 모두 인수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게 채권단의 전망. 지난번 포드 역시 일부 국내외 법인 인수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GM이 대우차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시아지역 거점확보 때문”이라며 “미래가치가 없는 해외 사업장이나 부실한 국내법인의 경우 인수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대우차에서도 채권단에 제출할 자구안에 매각에 걸림돌이 될 부실사업장은 사전에 정리하겠다는 계획을 포함시킬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공 많은 배〓GM의 대우차 인수의향서 제출은 당초 10일 산업은행과 GM에서 공동 발표하기로 한 사항. 그러나 이근영(李槿榮)금융감독위원장이 약속을 깨고 이 사실을 먼저 흘려 채권단을 당혹케 했다. 양측이 합의한 내용이 아니면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협상의 ‘ABC’를 저버린 것.

금융권에서는 “금감위원장이 협상내용을 흘린 것은 자칫 매각협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돌출행동”이라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산업은행 내에서도 매각을 주도할 임원이 수시로 바뀌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대우차 매각을 전담하던 박상배(朴相培)이사 대신 박순화(朴淳和)이사로 교체된 지 불과 열흘 만인 9일 산은은 다시 박상배이사를 전담임원으로 선임했다.

<정경준·이나연기자>news91@donga.com

▼대우車-GM 22년 애증사▼

22년. GM과 대우차의 질긴 인연은 다시 시작되는가. GM이 대우차 인수의사를 공식화함으로써 92년 이후 끊겼던 대우차와 GM의 22년 애증관계에 다시 한 번 눈길이 쏠리고 있다.

▽초기〓GM이 대우차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78년 7월. GM코리아와 산업은행이 합작해 만든 새한자동차의 산업은행측 지분을 대우차가 인수했다. 83년도에는 사명을 대우자동차로 바꾸면서 양사는 협력관계를 다져갔다. ‘월드카’ 개념의 소형차를 개발하기 원했던 GM의 전략에 따라 1986년에는 처음으로 양사 합작품인 ‘르망’이 탄생했다.

▽분열〓그러나 80년대말 GM의 간섭이 점점 심해졌고 대우차는 이를 부당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수출을 하려고 해도 GM은 시장이 중복된다며 유럽 미국 등지에는 못하게 하고 새 차를 개발하려는 계획에도 일일이 간여했다. 대우차는 결국 1992년 10월 GM측 지분을 전량 인수해 독자경영에 돌입한다.

이후 대우차는 영국에 기술연구소를 인수하고 인도 중국 루마니아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등 해외공장을 차례로 가동하는 한편 국내에서도 군산공장을 새로 짓는 등 공격적 경영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밀어닥치자 대우그룹도 자금난에 몰렸고 다시 GM측에 구조요청(SOS)을 하기에 이른다.

▽재결합?〓1998년 2월 양사는 전략적 제휴를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하며 협상을 본격화했지만 매각금액 차이로 협상은 지지부진해졌다. 더구나 GM의 북미 공장에서 조직축소 계획에 반발해 대규모 파업이 일어나면서GM과 대우차 협상은 중단됐으며 대우차는 지난해 8월 다른 계열사와 함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후 GM과 포드 대우차는 전략적 제휴와 인수, 포기 등 곡절을 거쳐 이제 GM은 다시 대우차의 유력한 인수대상자로서 인연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많은 절차가 필요하지만 대우차와 GM은 앞으로 새로운 관계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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