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잘릴지…" 은행원 등 퇴출증후군 확산

  • 입력 2000년 10월 10일 18시 40분


2차 기업 금융구조조정을 앞두고 샐러리맨들이 심각한 ‘퇴출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라는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당신은 괜찮아요?”라는 가족들의 걱정도 끊이지 않는다. 거꾸로 ‘이번 기회에 명예퇴직금이나 톡톡히 챙겨보자’는 심리도 만연하고 있다.

퇴출 불안심리가 극에 달한 곳은 역시 은행. 지난달 말 정부에 제출한 경영정상화계획서에 인력감축 계획을 공언한 한빛 외환 조흥 평화 광주 제주 등 6개 은행이 특히 두드러진다.

은행감축규모(명)위로금(월분)노조 동의여부
한빛1,500(비정규직 610명 포함)13∼24
외환860(비정규직 430명 포함)15∼21
조흥200*12*×
평화7312∼15
광주13812 이상
제주50(비정규직 15명 포함)9∼16*

A은행 직원들은 최근 거의 영업을 포기했다. 거래처에 가면 ‘저 사람은 살아남을까’하는 상대방의 시선이 느껴져 그냥 돌아오기 일쑤. 밖에 나갈 의욕이 생기지 않아 한 마디로 납작 엎드려있다.

B은행 L대리도 그동안 거래해 온 기업체 자금팀에서 보는 눈길이 영 부담스러워졌다. 그는 “담당자가 언제 갈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인지 찾아가면 피하는 사람도 있다”며 “인력감축이 끝나고 조직이 완전히 정비되면 얘기를 하자는 입장이어서 영업이 꽁꽁 얼어붙은 상태”라고 말했다.

C은행은 지점장들이 거의 손을 놓았다. 섣불리 대출해줬다가 덜컥 물리기라도 하는 날엔 ‘퇴출 0순위’가 된다. 과거 합병은행의 선례에 비춰볼 때 지점장이 살아남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판단으로 지점에서 본점으로 옮겨달라는 민원도 많다.

직급별로 세부 감축계획을 확정한 D은행의 사내 통신망에는 얼마 전 “평행원 감축규모를 늘려달라”는 황당한 요구가 올라왔다. 은행합병이 본격화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위로금을 많이 주는 이번에 나갈 기회를 달라는 것.

E은행 노조 관계자는 이같은 현상을 ‘심리적 공황상태’에 비유하며 “평생 직장이라는 믿음이 깨진지 오래인 데다 이번이 마지막 감축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했다.

퇴출대상으로 꼽히는 기업의 직원들은 신문에 오르내리는 퇴출기준이 꼭 자기회사와 들어 맞는다고 느낀다.

지방의 섬유업체에 다니는 K씨는 퇴출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사표를 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98년 퇴출된 금화방직의 경우 퇴출이 결정되기 전에 사표를 낸 직원은 퇴직금을 받았지만 퇴출 뒤에는 제 대접을 받지 못한 사례를 똑똑히 봤기 때문.

연내 15% 인력감축이 예정돼 있는 모 건설회사 현장 고참들은 아예일손을 놓고 ‘퇴직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정경준·박현진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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