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기아자동차 정몽구 회장 "판매늘면 유럽에 새공장 검토"

  • 입력 2000년 10월 10일 19시 00분


의외다. 농담도 한다. 말을 풀어가는데 주변 분위기가 부드러워질 정도다. 지난달 29일 정몽구(鄭夢九) 현대 기아차 회장을 세 번째 만난 인상이다.

한국 최대 그룹인 현대가의 장남 정몽구. 그를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단어는 ‘우직’ ‘저돌’ 등이다. 더구나 외부인사와 만나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긴장하곤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그는 거의 ‘석고상’ 같은 이미지였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달라졌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는 묻지 마세요. 홍보담당 최상무가 다 알아서 대답해줄거예요.”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마세요. 겁나잖아요. 하하”

세계 자동차업계의 흐름을 한 자리에 모아둔 모터쇼에 참가하기위해 프랑스 파리에 들른 정몽구회장은 기자들과 이렇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만났다.

“선약이 있어서 시간이 별로 없네요.”라며 여전히 서두르는 기색은 있지만 그는 대우자동차 인수와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조차 막힘이 없이 척척 대답했다. 대우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없다길래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쉬렘프회장과 독일에서 만나고 오는 길인데 월드카생산과 상용차부문 합작문제만 깊이 상의했어요. 대우차 이야기는 전혀 하지도 않았는걸요.” 정부와 채권단으로부터 인수의사를 타진받고 그동안 고민을 많이 했을텐데 단칼에 자른다.

“사실은 여기오기 전에 우리쪽 사람이 다임러 부회장을 슬쩍 떠봤어요. 그랬더니 다임러가 대우차에 대해 정밀 조사를 다 했다며 정말 관심없다고 하더라구요. 우리는 그사람들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지분을 10%나 가지고 있잖아요.”기자로서는 조금 긴장된다. ‘뉴스 거리’를 들을 때 나오는 일종의 ‘직업병적 반사작용’이다. 그런데

진의가 뭘까. 지금까지 현대가의 경영스타일은 정부의 ‘의중’을 짚어서 이를 처리한 뒤 그 반대급부를 챙기는 것이었지 않은가.

“국내에서 대우차와 관련된 고용인원이 2만5000명이나 됩니다. 정부입장에서는 고용안정이 제일 중요한 일이겠지요. 현대차도 동종업종으로 이같은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요.” 위탁경영을 할 의사가 없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위탁경영을 하겠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안하겠다는 이야기도 아니지만 ‘시켜만 주면 의사는 있다’고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세련되게 이야기한다.

그의 화술상 ‘세련됨’은 터키의 현대차 공장에서도 한 번 더 확인됐다. 현대차가 폴란드FSO 공장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 기자들은 오너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터키공장에서 만난 정회장에게 이를 물어봤다.

“여기를 거점으로 유럽시장 전체를 커버하는데는 한계가 있지 않겠어요? 판매량에 따라 유럽에 새 공장을 검토할 수도 있죠. 그렇다고 FSO를 인수하겠다는 말은 아니죠.”

선문답 같기도 하고 말장난 같기도 한 태도는 경영현황을 체크하는 데서는 좀 더 매서워졌다.

“이건 터키 현지에서 만든거예요? 원가가 얼마지? 값도 문제지만 제품력을 더 키워야하는 게 아니겠어요?”(차 의자에 들어가는 직물을 들어보이며), “터키공장의 연간수익이 얼마죠? 25만달러? 그정도 갖고 되겠어요? 50만달러는 돼야하는 것 아니에요?” 공장 책임자들이 거의 땀을 흘릴 지경이다.

그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준비된 퍼포먼스’라는 지적도 있다. 물론 연습은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들 어떤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않는가.

그룹의 울타리를 벗어나 독립한 뒤 일단 경영인으로도 성공이다. 올해 현대차나 기아차 모두 전례없는 이익을 낸다. 그러나 이제 세계적인 GM과 국내시장에서까지 샅바를 바짝 더 당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GM이 대우차를 인수하겠다고 나서 정면대결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이미지 변신에 그런대로 합격점을 받게 된 정회장. 그가 재벌 2세가 아니라 세계적인 자동차 전문경영인으로 자리를 할 수 있을 것인지. 그 시험과 확인은 이제부터다.

<약력>

▽1938년 3월 19일 생

▽1959년 경복고 졸업

▽1967년 한양대 공과대 공업경영학과 졸업

▽1989년 센트럴 코네티컷 주립대 명예 인문학박사

▽1974∼1987년 현대자동차써비스 대표이사 사장

▽1977∼1987년 현대정공 대표이사 사장

▽1982∼1987년 현대강관 대표이사 사장

▽1986∼1987년 인천제철 현대사업개발 대표이사 사장

▽1987∼1998년 현대자동차써비스 현대강관 현대산업개발 회장

▽1987∼현대정공 인천제철 회장

▽1996∼1998년 현대그룹 회장

▽1998∼2000년 현대경영자협의회 회장

▽1999년∼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회장

▽주량:소주 1병 ▽담배:하루 한 갑(에쎄)

▽취미:등산(매주) ▽골프:핸디 20

▽좋아하는 음식:불고기 냉면 ▽절대 안먹는 음식:보신탕

▽18번:추풍령고개 ▽가족관계:부인(이정화) 1남 3녀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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