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계가 의약분업 파행 및 국제 유가상승 등으로 삼중고(三重苦)를 겪고 있다.
1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의약분업 실시 후 의사의 처방과 관계 없이 판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의 수요가 평년보다 40% 줄었다.
원인은 의약분업 후 환자가 대거 몰린 대형 약국에서 전문의약품을 소화하기 때문. 업계는 “의약분업 이후 환자들이 대형약국에서 전문의약품을 사는 바람에 일반 의약품의 판매가 크게 저조했다”고 분석했다.
의약분업의 파행은 또 결제기간이 300일 이상인 어음을 주로 사용하는 유통업체와 약국의 자금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병 의원의 폐업 사태로 도매상에서 자금 흐름이 막혀 제약사가 매출을 올려도 현금이 돌지 않고 있다. 의약품도매협회 관계자는 “600여개 회원사 중 병원과 거래하던 300여 도매상의 매출액이 60% 이상 감소하고 병원으로부터 결제대금을 받지 못한 도매상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N제약 영업팀장은 “9월 조선무약이 부도처리된 이후 현금이 부족해 직원들의 수당을 의약품으로 주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앞으로 두 달 이내 10여개 중하위 우량 제약사들이 ‘흑자 부도’를 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최근 의료계의 현안인 생물학적 동등성 문제는 제약사의 생존에 결정적 변수로 떠오를 전망.
거래소 및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21개 대형 제약사들도 올 상반기 경상이익이 249%나 증가했지만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에 막대한 추가 비용을 들일 경우 타격이 예상된다.
의약품 포장 단위의 변경도 영세 제약사에는 부담. 대량으로 병 의원에 공급되던 전문의약품이 소형 포장으로 바뀌면서 포장비가 최고 60%까지 올라가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 상승과 경기침체도 대형 악재에 속한다.
이와 달리 외국계 제약사의 경영여건은 훨씬 좋아지고 있다. 다국적 의약품도매업체인 쥴릭파마를 앞세운 한국MSD 한국화이자 등 외국계 제약사는 의약분업이 실시된 이후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0% 이상 늘어났다.
J사의 한 직원은 “국내 제약업계가 70년대의 오일쇼크와 97년의 IMF 구제 금융 충격을 동시에 받고 있다고 비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