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제약 김태성 대표이사 "AIDS약 우리 없으면 못만들어요"

  • 입력 2000년 10월 16일 18시 36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AIDS’에 대해 잘 모르는게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에이즈가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약을 먹으면 거의 치료되는 병이라는 점, 또 하나는 전세계에서 쓰이는 가장 중요한 AIDS치료제의 원료가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생산된다는 겁니다.”

삼천리그룹 계열의 제약회사인 삼천리제약의 전문 경영인 김태성(金泰星·55) 대표이사. 대학시절 전공은 화학공학.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에서 분리되기 전인 83년 의약품 개발을 위해 미국에 세운 법인의 뉴욕지사장 겸 연구소 책임자로 발령돼 의약품과 인연을 맺었다.

94년 대표로 취임, 그저그런 ‘카피 약품’를 생산해 국내에 판매하던 중소 제약회사를 6년만에 연매출 600억원대의 세계적인 의약품 원료 수출업체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다.

“처음에는 다른 중소 제약회사와 다를게 없이 여러 분야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의약품 개발관련 업무를 하면서 느꼈던 것이 어설픈 기술수준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려서는 도저히 세계시장에 문을 두드릴 수 없다는 거였죠. 그래서 구조조정을 시작했습니다.”당시는 우리 경제의 거품이 한껏 부풀어 올랐던 시절. 다른 기업들이 빌린 돈으로 사업다각화에 열중하던 때였다. 하지만

김대표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히 불필요한 분야를 정리하고 기업의 ‘핵심역량’을 한곳으로 모으고 팀제를 도입했다.

“다국적 제약회사와 신약개발 경쟁을 하는 건 ‘덩치’를 고려할 때 무모한 일이었죠. 그래서 항암제, 항생제 분야를 정리하고 항바이러스제, 그 중에서도 특히 뉴클레오사이드 계열의 ‘원료’ 개발에만 연구인력을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AIDS치료제로 급부상하고 있던 ’AZT’의 원료생산기술에 기업의 역량이 집중됐다. 목표는 AIDS치료제를 생산하고 있는 다국적기업 글락소웰컴과 브리스톨마이어에 원료를 납품하는 것. 경쟁업체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할 미국 독일 일본의 제약업체들이었다.

오직 외길만을 걷는 ‘도박’은 적중했다. 생산공정의 개선으로 가격이 낮아지고 품질이 향상돼 미국 독일 일본의 기업을 차례로 제쳤다. 97년에는 글락소웰컴과 브리스톨마이어의 방계회사까지 물리치면서 AZT의 원료시장을 100% 장악했던 것. 매출의 대부분이 수출로 이뤄져 최근 제약업계를 강타한 의약분업사태에서 무풍지대로 남아있다.

“앞으로도 의약품 ‘원료’를 생산해 수출하는데만 집중할 겁니다. 수천명의 연구인력이 투입돼 6∼7년씩 걸려 개발되는 신약개발 경쟁에는 승산이 없지만 원료 양산기술에만 집중하면 충분히 세계 1위 기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 매년 총매출의 10%가량을 연구개발에 할애하고 있다. 바이오벤처 바람이 불기 전인 98년부터 ‘똘똘한’ 미국의 의약품관련 벤처업체에도 투자하고 있다. 최근에는 차세대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는 다국적기업과 약품개발단계부터 원료개발 부분에 협력하고 있다.

김대표는 요즘 12월 삼천리제약의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분주하다. 잔뜩 침체된 코스닥에 등록하려는 이유는 뭘까. “자금? 충분합니다. 상장하려는 이유는 다른데 있죠.

세계 초일류기업과 거래할 때 비상장기업이라는 것이 핸디캡이 된다는 점, 다른 하나는 회사를 널리 알려 세계를 상대로 경쟁할 수 있는 최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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