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투자자에게]김진만 한빛은행장 "가망없는 기업 도려낼것"

  • 입력 2000년 10월 17일 18시 36분


지난해 1월4일 자산규모 88조8000억원에 이르는 초대형 ‘한빛호(號)’의 선장이 된 김진만(金振晩)행장은 요즘 우울하다. 한미은행장 시절과는 분위기가 달라보였다. 상업―한일은행 직원들을 다독거려 겨우 자리를 잡아가려니 대우 사태와 관악지점 불법대출사건이 터졌다. 9월말에는 공적자금을 3조7000억원이나 달라고 국민앞에 손을 벌려야 했다.

―그 많은 나랏돈을 어디에 씁니까?

“‘물려받은’ 부실자산을 정리하는데 필요합니다. 대손충당금을 20% 쌓은 대출이 부실해져 원금의 절반만 건진다고 합시다. 충당금 빼고도 30%가 빕니다. 이것을 메꿔야 합니다.”

―부실대출이 얼마나 되지요.

“(실무자에게 전화로 물은 뒤) 전체여신의 16.8%가 고정이하(부실)입니다. 이번 경영개선계획서에는 이 비율을 연내 4%, 내년 말에는 2% 이하로 낮추겠다고 밝혔습니다.”

―퇴출심사 대상기업이 되는 곳이 많지요?

“가망없는 곳은 과감히 도려낼 예정입니다. 이번이 부실을 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니까요. 하지만 지금 눈앞의 숫자에만 얽매이지 않고 성장성과 경쟁력도 감안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몇 개나 됩니까.

“자세한 것은 그 쪽 일을 맡고 있는 임원이 알텐데….”(한빛은행은 퇴출판정 대상기업으로 200여곳을 가려낸 것으로 알려졌다)

―항간에는 한빛은행이 주관하는 몇몇 기업들 이름도 나돕니다.

“2∼3개 기업이 골치거립니다. 신동방은 이미 매각이 결정돼 한 시름 덜었고, K사, 또다른 K사 등은 아직….”

그가 숫자에 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짐짓 물었다.

―혹시 오늘 한빛은행 주가는 알고 계십니까?

“1600원쯤 하나?(그를 만난 13일 한빛은행 주가는 1455원, 12일은 1475원이었다) 사실 각 사업본부에 권한을 대폭 위임해 세부수치에는 약합니다. 큰 그림을 짜는 ‘전략가’ 정도로 이해해 주세요.”

―주식 투자자들의 관심은 한빛은행이 감자를 당하느냐에 쏠려 있습니다.

“뚜렷한 방향은 서있지 않습니다.”

그는 이어 “감자로 주식수가 줄어들어도 그만큼 주가가 상향조정되기 때문에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합병이나 금융지주회사 편입구도는 짜여졌습니까?

“깨끗하고 건강한 은행을 만드는데 주력할 뿐입니다. 단 다른 업종의 금융기관과 지주회사로 묶는 것은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쟁력있는 지주회사라면 한빛은행이 ‘플랫폼’ 역할을 할 생각은 있습니다.”

김행장은 힘겨운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빛은행에 닥친 잇단 위기가 오히려 합병 후유증을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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