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억지 요구에 조선 협상 난파 위기

  • 입력 2000년 10월 18일 18시 27분


조선 시장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한국이 유럽연합(EU)과 조선 협상문제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한국 업계의 저가 수주를 문제삼아 98년 시작된 이 협상에서 양측은 버티기를 계속해 좀처럼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다.

타결 여부는 곧 고비를 맞는다. EU집행위는 이번 주 우리나라에 실무진을 보내 다시 한번 협상테이블에 앉을 예정이다. EU측 대표는 7월 “한국측의 성의를 확인했다”면서 웃으며 돌아갔던 살바토르 살레르노 EU 집행위 철강 조선과장.

그러나 3개월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 그의 손엔 ‘강경 카드’가 들려 있다. 양측간 최대 쟁점은 ‘수주 원가의 공개’ 문제. 한국 조선업계가 제조하는 모든 선박의 수주 원가 구조를 분석해 자신들에게 알려달라는 것이 EU측 요구다. 즉 배 한 척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무비 원료비 연료비 이익 등이 각각 얼마인지 빠짐없이 들여다보겠다는 얘기다.

7월에 처음 이 요구의 운을 뗐던 EU측은 이후 강도를 높여왔다. 이젠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한국 조선업계를 세계무역기구(WTO)에 덤핑수주 혐의로 제소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지난달에는 현대중공업 등을 직접 방문해 원가 장부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내업계에서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무리한 요구라는 것.

원가공개 요구는 EU의 새로운 ‘메뉴’다. EU는 당초 조선협상을 시작할 때는 한국의 부실 조선업체에 대한 한국정부의 보조금 지급 중단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줄기찬 문제제기로 이 문제가 차츰 해소돼가자 원가공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EU의 이같은 강경한 입장은 무엇보다 한국 조선업계에 대한 ‘감정적 골’이 깊은 탓이다. 조선강국들인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최근 급성장한 한국 조선업계에 대해 적대감에 가까운 감정을 보이고 있다.

85년만 해도 10% 남짓했던 한국 조선업계의 점유율이 올해 상반기 현재 51.2%로 급상승했다. 반면 유럽은 85년 15.8%에서 올해 10.9%로 내려앉았다.

“한국 조선업계의 고속성장은 정부 보조금과 저가수주 등 비신사적 행위로 얻어졌다”는 게 EU 업계의 주장이다.

산업자원부 김영학(金榮鶴)수송기계산업과장은 “아직 협상중이긴 하지만 원가공개라는 무리한 요구는 응할 수 없어 최악의 경우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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