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비율 맞추기에 바빠 보유주식도 팔아야 할 지경이다.’(대기업)
정부가 내놓은 자사주 취득제도가 기업구조조정 핵심인 ‘부채비율 200% 충족’과 정면으로 배치돼 ‘기업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제도개선 취지는 좋지만 실효성 이 떨어진다는 게 업체의 목소리.
당국은 “기업들이 이익을 많이 쌓아놓았으므로 자사주 취득이 활발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기업들은 “연말로 갈수록 부채비율 200%를 맞추느라 자사주 취득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입장.
▽‘부채비율 200%’와 정면 배치〓정부와 기업이 이처럼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것은 자사주 취득 때 회계처리 문제 때문. 현행 기업회계 기준에서 기업들이 사들인 자사주를 부채항목인 자본조정계정으로 분류한다.
예컨대 A기업이 회사돈으로 자사주 1000억원어치를 사들이면 자기자본이 1000억원 줄어드는 대신 부채가 1000억원 늘어나는 셈. 결국 1000억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일 경우 부채비율을 종전과 같이 맞추려면 부채를 2000억원이나 줄여야 한다.
H기업 재무담당 이사는 “연말까지 부채비율 200%를 충족해야 하므로 부채비율이 늘어나는 자사주를 사들일 수가 없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마치 공식화된 ‘부채비율 200%’라는 족쇄 때문에 자사 주가가 떨어져도 사들일 엄두를 못낸다고 하소연한다. L그룹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부채비율이 200%가 안되면 금방 부도날 회사로 비치므로 자사주제도 개선은 기업 입장에선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정부 ‘배당가능 이익 굉장히 늘었다’ 느긋〓재경부 임종룡(任鐘龍)증권제도과장은 “기업들의 배당가능한 이익이 올 들어 많이 늘었다”며 “자사주 취득한도를 상법상 배당가능이익으로 넓혔기 때문에 자사주 취득여력은 현재 70조원에서 79조원으로 늘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자사주를 사는 기업엔 세금혜택도 주므로 지난해 마구 유상증자를 해 자금을 끌어썼던 기업들이 침체장에서 ‘성의를 보여라’는 압박이다.
▽기업회계기준이 관건〓상장사협의회 서진석(徐晉錫)부회장은 “기업들의 주가방어 의지가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며 “이런 대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기업회계기준상 자사주 취득시 부채로 인식되는 것을 조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니면 부채비율 200% 산정 때 주가부양을 위한 자사주 취득은 편입하지 않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는 것이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