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회생 무엇이 문제인가

  • 입력 2000년 10월 20일 18시 23분


외환은행이 18일 현대건설의 자구안을 발표한 뒤 ‘자금시장’은 현대건설에 대한 압박을 일단 중단한 채 현대를 세심히 살피고 있다. 정부나 외환은행의 움직임에서 “현대건설은 퇴출시키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읽은 것.

그러나 19일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 전환사채(CB) 및 현대아산 주식을 매입하지 않으려 하자 일부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과연 현대건설은 살아날 수 있을까’ 하고.

▽현대건설, 무엇이 문제인가〓현대건설은 현재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빚에 대한 이자를 낼 만큼의 영업이익을 남기고 있다. 이자보상배율이 1을 넘는다.

향영21세기 리스크컨설팅 이정조 사장은 “현대건설의 올 영업이익이 8000억원에 달하므로 부채 5조3000억원에 따른 이자 6300억원을 내고도 현금 여유가 있다”며 “부채구조가 견실하고 시장에서의 신뢰만 확실하다면 생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은 9월말 수주잔액도 22조원이어서 매출액 기준으로 3년치 공사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원금을 회수하지 않는 한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은 갖춘 셈. 문제는 금융기관들이 현대건설의 미래를 불확실하다고 보고 원금을 갚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 현대건설은 올 들어 원금(주로 기업어음·CP) 4000억원을 갚았다. 이자도 물었다. 그러나 빚 규모가 워낙 커 현금이 모자라면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

▽시장의 요구〓금융권은 현대건설이 우선 부채를 연말까지 4조4000억원 수준으로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2조4000억원에 달하는 회사채의 만기를 늦춰준다는 입장. 결국 현대는 어떤 수를 쓰든 간에 9000억원 가량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는 수차례 내놓은 자구안을 지키지 못했다. “주가폭락과 부동산 경기침체 때문에 약속이행이 어려웠다”는 게 현대측 설명. 그러나 시장에서는 현대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 현대가 건설을 끝까지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하는 분위기다. 지주회사를 현대상선으로 바꿔가고 있는 것도 ‘여차하면 건설을 버리고 배를 갈아타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 때문에 정주영(鄭周永)전명예회장이나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출자를 요구했다. 한국기업평가의 최경식 팀장은 “△대주주의 출자 △건설 보유, 상선 주식 및 현대아산 주식 매각 △이라크 공사대금 받기 등이 빨리 이뤄지지 않으면 시장의 실낱같은 기대도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의 움직임〓현대측은 우선 정 전명예회장 부자의 사재출자를 통해 건설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충분히 보여줬다는 입장. 또 명예퇴직 등 조직 슬림화도 다음주 실시하고 상선과 아산재단 주식 매각도 서두를 방침이다. 현대는 또 프랑스의 토탈사 등 외국회사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김윤규(金潤圭)현대건설사장 등이 총력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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