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코리아로 가는 길]인터넷 정보 家電시대 바로 눈앞에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8시 25분


아침 출근전 A씨는 냉장고에 붙어있는 단말기로 인터넷에 접속한다. 저녁에 만들 요리의 조리법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냉장고에 붙은 화면에는 조리법과 함께 어떤 재료를 더 사야하는지도 함께 나타난다. 바코드 리더가 붙어있어 음식 재료를 넣고 꺼낼 때마다 수량과 유효기간을 자동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A씨는 같은 화면을 통해 근처 수퍼마켓에 사야할 재료를 주문해놓고 퇴근길에 찾아오기로 했다.

휴대전화로 바깥에서 냉장고에 접속해 어떤 재료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똑똑하기는 전자레인지도 마찬가지. 역시 바코드 리더가 붙어 있어 어떤 내용물이 들어왔는지 자동으로 알아챈다. 전자레인지가 인터넷을 통해 조리시간과 적당한 온도를 다운로드 받기 때문에 주부는 그저 스위치만 누르면 된다.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옴직한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몇년만 지나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벌써 우리 주변에는 여러가지 기능을 갖춘 퓨전형 가전제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들 제품은 네트워크로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다.

디지털TV나 캠코더 등 흔히 디지털 기기로 불리는 제품들은 물론 냉장고와 세탁기처럼 전통적인 백색 가전도 네트워크로 서로 한 데 연결되는 ‘인터넷 정보가전’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최근 열린 한국전자전에서 가장 눈길을 끈 제품은 LG전자가 선보인 ‘인터넷 세탁기’였다.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세탁 방법을 다운로드 받는 이 세탁기는 백색 가전에 인터넷을 연결시킨 전형적인 제품.

아직은 케이블을 이용해 세탁기와 PC를 연결해야하는 수준이지만 인터넷과 결합한 백색 가전 가운데 세계에서 처음 판매되는 제품이다.

가전제품과 인터넷이 연결되는 이유는 무얼까. 가장 큰 이유는 가전제품의 기본적인 기능에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해 성능을 한 차원 높이기 위한 것이다.

특히 이른바 N세대는 유무선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능을 전자제품의 기본 기능으로 인식하고 있다.

PC가 일반 가전제품에 비해 사용하는 데 불편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LG―EDS시스템 한호선 부장은 “30∼40대의 주부들을 인터넷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TV처럼 그동안 친숙했던 기기를 활용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국내외 전자업체들은 ‘정보 가전’이 앞으로 전자산업의 주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고 사업전략을 짜고 있다. 한국도 올초 정보통신부 주도로 인터넷 정보가전 분야에서 2005년까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기기와 가전산업에서 기술력을 쌓아온 일본이 차세대 정보가전 분야에서도 주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등장한 디지털 가전제품 가운데서 프랑스의 톰슨이 개발한 디지털 위성수신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품은 일본업체가 처음으로 상품화한 것만 봐도 그렇다.

소니가 95년 디지털 캠코더를 가장 먼저 선보였고 보급형 디지털 카메라는 카시오가, 디지털 VHS VCR은 JVC가 처음이다. 차세대 저장매체로 각광받고 있는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의 규격을 제정한 DVD 포럼의 10개 멤버중 7개 업체가 일본업체다.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업체인 마쓰시타와 소니도 정보가전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바쁜 걸음을 걷고 있다.

마쓰시타의 카도타 아키라 과장은 “냉장고나 세탁기 등 기존 가전제품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 요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제품 기능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 시나가와(川)에 있는 마쓰시타의 가정 정보센터(HII·Home Information Infrastructure)에는 인터넷 전자레인지와 인터넷 냉장고 등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양한 가전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마쓰시타의 제품군은 전통적인 백색가전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경쟁업체인 소니와 다르다. 디지털 기기의 브랜드는 파나소닉으로, 백색가전은 내셔널 브랜드로 차별화했다.

반면 소니는 디지털TV와 게임기, 디지털카메라 등 엔터테인먼트용 AV기기에 촛점을 맞춘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소니 홍보부 사카구치 케이 부장은 “디지털 제품만 놓고 보면 소니의 기술력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가전제품을 유선이 아닌 무선으로 연결하기 위한 노력도 벌어지고 있다. 스웨덴의 에릭슨 등 전세계 1400여 업체가 참여한 근거리 무선 기술표준인 블루투스가 대표적인 예. 블루투스에는 삼성전자 등 한국 전자업체들도 대부분 가입했다.

소니와 마쓰시타는 이와 별도로 데이터를 칩에 저장했다가 오프라인으로 데이터를 주고 받는 플래시메모리 카드 분야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도 이 분야에서 스마트카드라는 독자 개발한 제품을 내놓고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21세기 전자업계의 화두는 디지털과 네트워크다.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을 결합시킨 정보가전과 홈네트워크가 전자산업의 판도를 바꿔놓을 태풍의 눈으로 다가오고 있다.

<도쿄〓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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