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장〓정부당국자는 지난달 31일 “회사가 1차 부도가 났는데도 실질적 오너인 정몽헌(鄭夢憲)회장이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건설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 기류가 심상찮다. 정부는 현대측의 자구노력을 지켜보되 노력이 미흡할 경우 강도 높은 ‘손질’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팀 수장’인 진념(陳稔)재정경제부장관의 최근 발언도 눈여겨볼 만하다.
진장관은 지난달 30일 “특정업체를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연말까지는 모든 문제를 경제원리에 따라 원칙적으로 풀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금부터 1∼4주가 우리 경제의 고비”라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날 부작용을 참고 견딜 수 있는가가 앞으로 우리 경제의 사활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서산농장을 장부가격으로 사달라는 현대측 요청에 대해서는 “경제원리에 맞지 않고 명백한 특혜”라며 일축했다.
정부는 그동안 현대건설 처리문제를 놓고 적지 않은 고민을 해왔다.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역할을 해온 현대건설이 어려워질 경우 경제에 미칠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시 등에서 ‘대마불사(大馬不死)론’ 등 정부의 기업구조조정 의지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커진 데다 현대측이 자구노력에 미적거리자 원칙론으로 방침을 굳혔다. 게다가 금융감독원을 둘러싼 추문이 터지면서 정부의 도덕성 시비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현대건설 처리 등에 예외를 두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채권단이 바뀌었다〓서울은행측은 신규자금에 75% 이상의 찬성이 나오지 않는다면 바로 자금지원은 부결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의가 시작되자 다른 소리가 나왔다.
회의에 참석했던 기업구조조정위원회의 사무국장이 “원칙적으로는 찬성률 75% 미만이면 부결이지만 이번엔 다르다”며 “찬성률이 50∼60%면 다시 채권단회의를 열어 신규자금지원 건을 논의하고 20∼30%면 워크아웃중단결의를 해야하지 않느냐”고 말한 것.
이 때문에 채권단은 안건의 부결 조건도 확실히 모른 채 표결에 참석했다. 채권단은 찬성률 25.26%로 동아건설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단 2개의 금융기관이 찬성했을 뿐이었다.
원칙적 부결에도 불구하고 채권단은 의례적 결정을 내렸다. ‘신규자금지원 건을 재부의할 것인지, 워크아웃중단결의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요 채권단회의를 다시 개최키로 한 것. 그러나 결과는 워크아웃중단 결의로 나왔다.
지난달 31일 1차 부도처리된 현대건설에 대한 주채권은행의 입장도 며칠 전과는 180도 달라졌다.
현대건설의 퇴출은 절대 없다고 강조해온 외환은행이 “현대건설은 주채권은행의 도움 없이 자체자금으로 어음을 결제해야 한다”며 “이를 막지 못하면 최종 부도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순활·이나연기자>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