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퇴출 3일발표]50여社중 30여곳 사실상 문닫는다

  • 입력 2000년 11월 2일 19시 24분


《‘피의 금요일’로 기록될 3일의 퇴출기업 발표를 하루 앞둔 2일, 어느 기업이 살고 어느 기업이 죽을지를 결정짓는 ‘살생부(殺生簿)’가 거의 완성됐다. 현대건설과 쌍용양회 등 5개 기업은 결정이 3일 오전으로 유보됐고, 은행들이 시장과 개별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퇴출기업을 밝히기 꺼려하고 있으나 운명은 이미 결정나 있다. 퇴출 대상 기업의 4분의 1은 건설업체가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빅5’ 중 동아건설 퇴출, 고합 진도는 회생〓동아건설이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이 된 양상이다. 물론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고 신규자금 지원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객관적 조건이 있었지만 분위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건설은 현대측의 자구노력을, 쌍용양회 등 쌍용계열사 4개사는 쌍용정보통신 매각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며 하루 유보됐다. 일본의 태평양시멘트로부터 3650억원을 유치하고 조흥은행 등 채권은행이 3000억원의 출자전환을 해줘 회생시키는 것으로 거의 확정됐던 쌍용양회도 ‘조건부 회생’이라는 멍에가 씌워졌다. 다만 큰 방향을 사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고합은 유동성이 좋아졌다는 이유로 회생 결정이 났으며 진도는 CRV(구조조정투자회사)에 매각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이번 퇴출기업에는 워크아웃 중인 기업이 42개(대우 계열사 10개 포함)나 포함돼 실질적으로 퇴출당하는 부실 징후 대기업은 10개 안팎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9월말 ‘2단계 기업 구조조정방안’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부실 징후 대기업만 20∼30개 퇴출시킬 것이라던 것보다 상당히 약화된 셈이다.

▽은행간 이견도 팽팽〓막판까지 채권은행단의 견해가 팽팽하게 맞선 기업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충남방적 성창기업 벽산건설 등 일부 기업은 채권단의 100% 찬성으로 회생 결정이 났다. 고합(86%) 새한미디어(80%) 새한(90%) 갑을(86%) 등도 비교적 쉽게 결정됐다. 반면 갑을방적(76%) 조양상선(75%) 등은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했으며 신성통상 동보건설 대농 신원 등 일부 기업은 막판까지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설사가 퇴출 대상 기업의 4분의 1이나 차지했다. 부채비율이 높다는 특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건설경기가 나쁘다는 경기순환도 가세한 것으로 분석된다.

▽퇴출기업 어떻게 되나〓최종 발표를 하루 앞둔 2일 현재 50여개 기업 가운데 대우계열사 10여개를 포함해 30여개는 청산 또는 법정관리로 사실상 회사 문을 닫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건설과 신화건설은 이미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다. 이 밖에 고합 진도 세풍 등 20개는 국내외에 일괄 또는 부분매각으로 ‘주인만 바뀔 뿐 공장은 계속 돌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빛은행 퇴출심사팀측은 “채권 확보를 주력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50여개 기업의 구체적인 운명은 법정관리, 워크아웃, 정상 경영 등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파산 대상 기업은 관할 법원 파산부가 파산관재인을 선정해 ‘기업 문닫기’ 작업을 총괄한다. 이때 회사의 채권을 회수하고 공장부지 건물 설비시설을 팔아 채권자에게 우선순위에 따라 나눠준다. 총 청산절차는 최소한 2∼3년이 필요하다. 한빛은행 김정호 회계사는 “한보철강이나 대우자동차처럼 공장을 돌릴수록 손실이 난다면 공장가동을 멈춰야 하지만 청산가격 폭락을 막기 위해 억지로 돌려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법정관리는 통상 이자지급이 최대 10년까지 유예되는 등 채권 확보에 어려움이 있지만 ‘법정관리가 도피처로 악용된다’는 지적에 따라 동아건설 등 법정관리 기업의 처리는 이례적으로 빨라질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고합 진도 세풍 등의 매각작업은 인수희망자에 따라 분할매각인지 일괄매각인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고합그룹은 2일 “울산지역 공장 2곳을 외국에 매각키로 했다”고 분할매각 방침을 발표했다. 김회계사는 “사업부문별 분할매각의 경우 업무효율을 따져 종업원까지 한꺼번에 팔기도 한다”고 말했다.

<홍찬선·김승련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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