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기준 뭔가"… 해당기업들 망연자실

  • 입력 2000년 11월 3일 19시 04분


“무슨 근거로 우리 회사를 퇴출시킨단 말인가.”

퇴출기업 명단이 발표된 3일 해당 기업들은 일제히 불만을 터뜨렸다. 일부 직원들은 “회사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연줄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구명 운동을 벌였거나 ‘배경’이 있는 기업은 살아났고 그렇지 않은 기업만 당했다”고 성토했다.

퇴출 판정을 받은 한 건설업체 직원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채권단과 협의해 일부 부채를 갚고 아파트 분양도 재개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퇴출 대상에 포함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재계는 이번 조치로 금융시장이 정상화돼 자금사정이 개선되기를 기대하면서도 퇴출기업을 판정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절차상의 문제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입장. 무엇보다 50여개 기업에 대해 한꺼번에 퇴출 결정을 내린 것은 개별기업과 업종의 특수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전경련 이승철 기획본부장은 “기업의 퇴출과 진입은 시장경제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일상적 현상인데 금융당국이 퇴출을 주도한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시한을 정해 놓고 작업을 진행한 것을 감안할 때 졸속 결정의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한 중견그룹 임원은 기업의 가치를 따지려면 이자보상배율 등 재무제표 외에 △기업 내부상황 △업종 특성 △해외경기 동향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능력 △브랜드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과연 선정과정에서 이런 점들이 충분히 고려됐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퇴출기업 면면을 놓고 볼 때 주채권은행 입장에서 퇴출에 따른 부담이 적은 기업만 포함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들이 기업의 본질가치에 무게를 두기보다 ‘은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더 고려한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금융기관에 기업정리를 맡길 경우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부실기업을 눈감아주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 당국이 나섰다는 논리를 무색케 한다는 지적.

재계는 “정부가 기업 퇴출을 진두 지휘하는 듯한 모양새는 장기적으로 국가신인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벤트성 부실기업 퇴출은 이번으로 끝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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