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릿수의 대일 역조는 97년 이후 3년만이다. 이같은 대일 무역적자는 10월까지의 무역흑자 97억달러와 비슷한 규모. 산자부가 예상하는 올해 연간 대일 역조 120억달러도 올해 전체 무역흑자목표와 같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들인 흑자만큼을 고스란히 일본과의 무역에서 까먹는 셈이다.
대일 무역적자는 96년 157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97년 131억달러, 98년 46억달러 등으로 감소했으나 지난해는 다시 83억달러로 확대된 데 이어 올해에도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일 무역적자는 우리 무역의 구조적인 약점. 일본과의 무역이 본격화된 60년 이후 지난 40년간 우리는 단 한해도 일본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나타내지 못했다.
정부는 86년과 93년 두차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대일 역조 개선 5개년계획’을 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두차례 모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당시 5개년계획 입안에 참여했던 오영교(吳盈敎)산자부차관은 “뭔가 실적을 내야 계획을 밀고 나가는데 당시 정부에서도 별로 자신을 가지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오차관은 특히 대일 시장 공략의 어려움으로 일본의 복잡한 유통시장 장벽을 들었다.
그러나 대일 역조는 근본적으로 핵심부품에 대한 대일 의존도에서 비롯된다.
한국경제에 대해 독설을 퍼부은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가 꼽는 한일 격차의 핵심도 ‘부품산업 경쟁력’이었다.
국내 전문가들도 한국 산업구조가 중화학공업과 첨단업종으로 고도화될수록 대일 역조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대일 의존이 뿌리깊다 보니 ‘표준’ 자체가 일본 제품을 따라가고 있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일제를 써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대일 역조는 우리 경제구조의 취약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즉 쓸만한 부품을 만들지 못하는 기술력, 조립산업 위주인 주력 업종의 편중 등이 대일 역조를 낳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일 역조의 개선은 특히 부품산업의 기술력을 높이고 산업구조를 건실하게 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 오정훈(吳貞勳)책임연구원은 “대일 역조는 일시적인 대책으론 풀 수 없는 우리경제의 장기적인 과제라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