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영종도 부동산의 관련 당사자들은 정상적인 계약을 통해 제3자에게 넘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해명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점이 많다. ‘형식상’ 영종도 땅을 매입한 중소업체가 이 땅을 매입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일고 있는 데다, 이 업체 대표 부인과 김우중 전 회장 부인 정희자 대우개발 회장이 두터운 교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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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부동산은 ㈜대우가 소유해온 인천 영종도(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시 중구 운북동 779의 1번지 일대 4필지)의 잡종지 11만5891평. ㈜대우는 88년 3월 한창통상㈜으로부터 이 일대 12만1057평을 6억9000만원에 매입했다. 그러나 작년 5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1㎡당 5만9000원에 5166평을 수용했고, ㈜대우는 나머지 11만5891평을 작년 8월까지 소유해왔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땅은 원래 한창통상㈜이 86년 바다를 매립해 생긴 매립지로, 한창통상이 이곳에서 사금을 채취했다고 한다. 대우에 넘어간 이후에는 놀려두고 있었으나 인천시가 98년 이 일대를 신도시 조성지역으로 확정하면서 다시 부동산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 이 땅 옆으로는 서울∼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편도 2차선 도로가 개설됐다. 장차 엄청난 개발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게 인근 부동산업자들의 이야기다.
공항연결 도로개설 엄청난 개발이익 기대
이 땅은 현재 소유권 이전 가등기가 설정돼 있다. 작년 8월24일 ㈜삼신금속이 매매예약을 근거로 가등기를 접수한 것. 의혹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날은 채권단이 ㈜대우 등 대우 계열 12개사에 대한 실질적인 부도를 선언하고 워크아웃을 개시하기 이틀 전에 해당된다. 따라서 김우중 전 회장이 대우그룹 워크아웃 결정을 사전에 감지하고 이 땅을 황급히 삼신금속 명의로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 당시 대우그룹 회장실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도 “워크아웃 직전 ‘위에서’ 일부 재산을 빼돌리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남상국 ㈜대우 건설부문 사장은 “복잡한 내용이어서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대우측이 그 땅을 도시계획에 편입해준다는 조건으로 오래 전에 매매계약이 이뤄졌다. 그러나 그 조건을 이행하지 못해 아직까지 잔금을 못 받았기 때문에 명의이전을 해주지 않았다고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매수인인 삼신금속 강신주 사장 역시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 매각을 내용으로 하는 90년 5·8 조치에 따라 ㈜대우가 이 땅을 매물로 내놓았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91년 ㈜대우측과 접촉해 계약을 체결했는데, 대우측이 도시계획에 편입해준다는 이면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아직까지 계약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우측이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에 해명한 자료에 따르면 대우와 삼신금속 사이에 매매계약이 체결된 것은 91년 2월25일. 삼신금속은 당시 매입대금 50억원 중 10억원을 계약금으로 대우측에 지급했다. 1차 중도금 10억원도 약 4개월 후에 지급했으나 나머지 중도금과 잔금은 13차례에 걸친 계약 변경을 통해 조금씩 지급돼 왔고, 대우측은 올 6월12일 마지막 남은 잔금 5억원에 대해 내년 말로 유예해주었다. 매매 대금도 작년 8월 45억원으로 5억원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부동산 거래 관행을 감안할 때 이 계약은 의혹 투성이다. 우선 매수자인 삼신금속의 실체에 대한 의문이 일고 있으며, 10년 가까이 매매계약이 완료되지 않고 있음에도 법정소송으로 비화되지 않는 점 또한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 삼신금속으로서는 그동안 이 땅에 묶인 자금 45억원에 대한 기회비용을 생각한다면 뭔가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 않을까.
또 대우로서는 당시 이 땅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불리한 입장이었다고는 하지만 시가에 비해 지나치게 싼 값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것도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당시 이 지역은 평당 20만원을 호가했다고 한다. 대우가 삼신금속에 넘긴 땅은 240억원을 넘는다는 이야기다. 또 삼신금속은 91년에 계약금과 중도금 20억원을 지급했음에도 그동안 무엇을 믿고 소유권 이전 가등기를 해놓지 않았는지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삼신금속의 외형만 보면 과연 이 회사가 5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매입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종업원 11명의 삼신금속은 자본금 57억6000만원인 주방용품 생산업체. 강신주 사장은 매출액에 대해 밝히기를 꺼렸지만 자본금보다 적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는 회사 규모에 비해 수익성이 지극히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10여년간 매매 지연, 지나치게 싼값 등 숱한 의문
삼신금속이 영종도 땅 매입 능력이 있다고 해도 개발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강신주 사장은 “이 땅에 레저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투자자금 조달과 관련해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강사장은 매입 경위와 관련, “삼신금속은 중국 제품에 시장을 뺏겼기 때문에 업종을 전환하기 위한 차원에서 자본금을 증자해왔고, 그 돈으로 영종도 땅을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증자자금의 출처와 시기. 강사장은 삼신금속을 비롯해 삼신봉직 ㈜삼신(구 삼신전자) 등 세 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충분한 재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 회사 중 가장 건실하다고 할 수 있는 삼신봉직은 98년 말 현재 자본금 4억9000만원으로, 이해 매출액은 22억6800만원, 당기순익은 2억3300만원 수준이었다. ㈜삼신은 74년 일본계 자본과 합작으로 설립돼 스피커 생산 및 수출을 해왔으나 96년 일본측 자본이 철수, 현재 업종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상태. 작년 말 현재 자본금 50억원, 매출액은 4억3500만원, 당기순익은 1900만원 적자를 기록했다.
세 회사의 이런 경영 실태를 보면 강사장이 독자적으로 증자해왔다고 보기 어렵다. 이 부분에서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인테리어 업자 김모씨. 김씨는 영종도 땅 매매계약 체결 직후 삼신금속에 10억원을 출자했음이 확인됐다. 이 증자대금은 전액 대우측에 중도금으로 지급됐다. 또 94년 6월 지급된 3차 중도금 3억원을 비롯, 94년 10월의 4차 중도금 2억원, 95년 4월의 5차 중도금 1억원 등 총 6억원은 대우측이 공동사업을 약정하고 미리 삼신금속에 지급한 선급금이었다는 점도 대우와 삼신금속의 ‘특수관계’를 보여주는 대목.
이와 관련, 대우 관계자는 “당시 힐튼호텔 일을 하면서 정희자 대우개발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김씨가 삼신금속 증자 시 김우중 전 회장에게 명의를 빌려주었다는 의혹이 일었다”면서도 자세한 언급은 피했다. 삼신금속 강사장은 “김씨를 정희자 회장에게 소개해준 사람은 바로 나”라고 말했다.
정희자 회장과 김씨가 알게 된 것은 지난 78년이었다. 당시 김씨는 서울 성북동 강사장 자택을 수리한 적이 있었다. 자녀들이 같은 유치원에 다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정희자 회장이 그 무렵 강사장 부인 초대로 강사장 집을 방문해 김씨의 인테리어 솜씨에 감탄하자 강사장이 두 사람을 연결해주었다는 것.
재미있는 사실은 영종도 땅과 관련된 의혹이 드러나게 된 계기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는 점이다. 대우그룹 회장실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작년 5월 부도가 난 김씨가 올해 들어 영종도 땅 매매 과정과 관련한 의혹을 언론에 폭로하겠다며 대우 경영진들에게 돈을 요구하고 다니면서 극히 일부의 대우 경영진 사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건설회사 외부 감사 경력 13년차의 한 공인회계사는 “삼신금속이 그동안 소유권 이전 가등기를 해놓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삼신금속이 대우측에 지급한 매매대금 중 김우중 전 회장 돈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굳이 소유권 이전 등기라는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없었을 거라는 설명이다. 그는 또 “대우와 삼신금속이 전혀 관계없는 사이라면 삼신금속 입장에서는 소유권 이전 가등기를 해놓는 게 기본 상식에 속한다”고 말했다.
부랴부랴 가등기 설정 ‘특수관계’ 의혹
이에 대해 강사장은 “대우가 망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가등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강사장은 또 “작년 초 이후 대우그룹 위기설이 시중에 떠돌아 대우측에 가등기를 요구했지만 대우 내부의 결재 단계를 거치다보니 대우 워크아웃 직전에 가등기가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설정되지 않고 있던 소유권 이전 가등기가 대우 워크아웃 직전에야 갑자기 설정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중견 건설회사 사장 L씨는 매매계약이 10여년 간 완료되지 않은 경우는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설사 강사장의 설명대로 대우측과 이면계약이 있었다고 해도 2~3년 내에 이면계약이 이행되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하든지 그 책임 문제를 둘러싸고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영종도 땅의 경우 매매 쌍방이 ‘특수관계’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대우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이나 ㈜대우 경영진의 태도다. 이런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남상국 대우 건설부문 사장은 “그런 부동산이 워낙 많아 일일이 신경쓰기 힘들다”면서 “은행에서 파견나온 경영관리단이 부동산 리스트를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한 조치나 대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대우 워크아웃을 주관하는 한빛은행 관리여신본부장 김종욱 상무는 “대우측 해명을 들어보니 전혀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대우가 금융권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으며, 그 때문에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태도다.
영종도 부동산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만일 김우중 전 회장이 빼돌린 것으로 밝혀진다면 이를 회수해 국민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윤영호 주간동아기자>yyo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