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택銀 짝짓기]"뭉쳐야 산다" 다른 은행합병 자극

  • 입력 2000년 12월 24일 18시 24분


《국민 주택은행이 합병을 선언하면서 다른 은행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세계 60위권 은행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부 등 외부 압력이 없더라도 스스로의 필요 때문에 살길을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하나 한미은행간 합병 시기가 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독일 코메르츠방크도 정부 주도의 금융지주사 편입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협 느끼는 시중은행들〓국민 주택은행의 합병은 양해각서(MOU)가 법적 효력이 없어 이견이 생길 경우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또 노조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내년 6월말까지 최종적인 합병에 이를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시중은행들은 ‘합병 선언’ 그 자체만으로도 벌써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국민 주택은행이 합병시 가장 위협적인 것은 소매금융의 45% 가량을 차지하게 된다는 점. 기업대출 부문에서 엄청난 부실로 인해 지난 2, 3년간 쓴맛을 본 한빛 조흥 외환 제일은행 등 기존 기업금융 중심의 은행들은 진작부터 소매금융에 사활을 걸어왔다.

이 때문에 초대형 소매금융 전문 은행의 탄생은 이들 은행에는 ‘시장의 파이를 잠식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변화를 의미한다. 신한 하나 한미은행 등 우량 은행의 경쟁여건도 급속히 악화될 것이 뻔하다. 정부가 일부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국민과 주택의 합병을 그토록 밀어붙인 것도 이같은 은행권의 ‘구조조정 유발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

▽은행권 ‘합종연횡’ 가시화될 듯〓국민 주택은행의 합병선언에 대해 하나은행 김승유(金勝猷)행장은 지금쯤 미소를 짓고 있을 지도 모른다. 칼라일이 그동안 내심 합병 후보로 생각했던 주택은행의 카드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상태에서 하나은행과 합병을 서두르지 않겠느냐는 기대 때문이다.

물론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그같은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직도 칼라일은 ‘실사를 한 뒤 합병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민 주택합병은 현재 정부 주도의 금융지주사 편입을 놓고 장고(長考)중인 독일 코메르츠방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 금융 전문가들은 초대형은행이 탄생한 상황에서 외환은행이 장기적으로 독자생존이 어렵기 때문에 결국 한빛은행의 지주사로 편입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또 다른 독자생존 은행인 조흥은행도 증권 및 보험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금융지주회사로의 행보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도 기존 금융지주회사 방안을 공고히 할 전망. 그러나 신한은행이 합병에 갑자기 뛰어든다거나 하나―한미은행 합병이 결렬될 경우 ‘제3의 조합’의 주체가 될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어떤 조합이든 간에 국민 주택은행 합병 성사로 내년말 은행권은 기업금융 중심의 한빛―외환 금융지주회사와 소매금융중심의 국민―주택 합병은행 등 2개 초대형 은행이 주도하고 나머지 3, 4개 중형은행이 그 뒷선에 포진하는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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