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은행권 최초로 장기간 파업으로 이어진 노조와 정부의 갈등에 대해 금융권에선 ‘모두가 패자인 게임’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부 노조 해당은행의 희생은 컸지만 얻은 건 적다.
삼성금융연구소의 정기영 소장은 “정부가 부실은행은 지주회사로 묶고 우량은행은 대형화한다는 금융구조조정의 큰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시간에 쫓겨 구조조정을 추진하다보니 무리수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 국민 주택은행의 합병 추진에서 도덕성과 신뢰성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됐다. 겉으로는 ‘자율합병’을 내세웠지만 ‘올해 안에 우량은행간 합병 가시화’라는 발언을 이행하기 위해 이를 원격조종했다는 의혹을 샀다.
특히 정부측이 국민 주택은행의 합병 논의 과정을 사전에 발표해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빌미를 제공했으며 이들 은행과 연대 파업한 평화 광주 경남 등 지주회사 편입 은행에 2002년 6월까지 독자 경영권을 연장해 줘 스스로 구조조정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러나 국민 주택은행의 합병에 따른 대형 우량은행의 탄생으로 타 은행의 자율적 합병을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그나마 득(得)이다.
국민 주택 양 은행의 경우 얻은 것은 불확실하고 잃은 것은 명확한 상황이다.
양 은행장의 전격적 합병 발표로 노사간의 신뢰가 무너진 데다 양 은행장의 ‘경영 독자성’도 의심받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신인석 연구위원은 “합병을 추진하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나 양 은행장은 이를 잃어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향후 합병효과를 얻기 위해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파업으로 이를 상당부분 포기했다는 것.
전문가들은 우량은행으로서의 브랜드 이미지도 추락했다고 평가했다. 국내의 경우 은행에 대한 브랜드 충성도가 없어 언제든지 은행을 바꿀 수 있다. 실제로 양 은행 관계자들은 파업기간 중 빠진 자금의 적지 않은 부분이 돌아오지 않을까봐 우려하고 있다.
또 양 은행이 ‘합병효과’로 소매금융에서의 확실한 가격 경쟁력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 역시 조합원간 화합 없이는 얻기 어렵다. 주택은행 김정태 행장은 “솔직히 합병 이후 양 은행원간 화학적 융합이 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금융노조는 파업철회로 특히 타격을 입었다. 국민 주택은행의 파업이 명분 없는 ‘제 밥그릇 챙기기’로 인식됐으며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는 집단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28일 총파업이 완전 무산되자 금융계에선 앞으로 금융기관의 노조가 산별노조로서 연대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총파업에 불참한 지부 은행들은 7월 총파업시 국민 주택은행이 파업불참을 선언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정용관·이나연기자>yongari@donga.com
금융구조조정과 은행파업으로 인한 정부 노조 은행의 득실 | |||||
정부 | 노조 | 은행 | |||
얻은 것 | 잃은 것 | 얻은 것 | 잃은 것 | 얻은 것 | 잃은 것 |
△‘연내 우량은행간 합병’발언 현실화 △소매금융에서 대형은행 탄생 △구조조정을 앞당길 수 있는 단초마련 | △지주회사 편입된 부실은행의 독자경영기간을 연장해 구조조정지연 △시장원리에 충실한다는 원칙 훼손과 신뢰상실 △연말자금시장 혼란가중 | △지주 회사에 편입된 은행들의 자율권 보장 시기 연장 | △‘금융구조조정이 발목 잡는 집단’이라는 이미지 얻음
△국민 주택은행합병취소 실패
△총파업 불발로 위상격하 | △지주사편입은행은 자율권보장 시기 연장 △합병이후 시너지효과 기대 | △신뢰도 및 브랜드이미지에 타격 △파업기간 중 양 은행의 수신고 약 2조원 격감 등 경영에 타격 △장기적으로 고객이탈 △향후 구조조정의 어려움 |
▼국민-주택은행 노조위원장 일문일답▼
금융산업노조 이용득 위원장과 국민은행 이경수, 주택은행 김철홍 노조위원장은 28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28일 오후 4시20분을 기해 파업을 일단 유보하고 모든 조합원에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파업 유보 이유는….
“이번 파업을 통해 정부와 은행 책임자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보여준 행동이 궁극적으로 어떤 대가로 돌아오는가를 분명히 보여줬다. 그러나 자금 이동이 집중되는 연말에 파업으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해 결정했다.”
―파업 유보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이 예상되지 않나.
“파업에 대한 모든 책임은 지도부에 있다. 아직도 조합원의 90%는 업무에 복귀하지 않지만 이들의 고생이 너무 심하다. 지도부는 향후 투쟁을 위해 이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정부측과 어떤 협상이 있었나.
“파업 지도부는 사법적 신분상 협상할 위치에 있지 않다. 한국노총위원장이 협상한 것으로 안다.”
―합병에 대한 노사간 자율협의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겠는가.
“파업 중 국민 주택은행장을 한 차례 만났는데 은행장들도 합병을 놓고 노조와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내년 6월말로 돼 있는 합병 시한 연기를 요청했나.
“그런 일 없다. 합병은 반드시 노사간 자율적 협의를 거쳐야 한다.”
<김두영기자>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