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작년 3월 일부 부실 생명보험사를 인수합병하여 새롭게 출발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다시 구조조정이라는 혹풍에 휘말릴 어려움에 처해있다.
지난 한 해 동안 회사가 날이 갈수록 견실해져 가는 모습을 가장 큰 보람과 자랑으로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3,000여 생활설계사를 비롯한 직원들에게는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아닐 수 없다.
어렵게 직장을 구해 불과 몇 개월 전에 입사한 우리 팀의 막내 사원은 자신이 이 회사의 마지막 입사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며 풀이 죽어 있고, 고객서비스 여직원들은 “어찌 된것이냐”는 고객들의 항의에 오늘도 곤혹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의 징후는 회사 곳곳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언 손발을 녹여주는 화톳불 같은 동료들간의 우정이 그렇고, 내일 회사가 문을 닫는다 하더라도 고객과의 계약은 끝까지 지켜나가겠다는 약속의 소중함을 믿는 사람들이 그렇다.
지난 연말, 우리 팀원들은 아주 특별한 새해 선물을 받았다. 한 직원이 건넨 곱게 접은 봉투 안에 들어 있던 500원 짜리 복권 한 장, 그 복권 한 장에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슴속에서 울리고 있을 희망의 종소리만은 잊지 말자는 무언의 기원이 담겨 있었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을 만든다고 어느 노시인은 말했지만, 지금 이 시대의 모든 직장인들이 꿈꾸는 것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따뜻한 저녁 밥상에 마주 앉을 수 있는 퇴근 후의 시간, 적어도 내가 다니던 직장이 하루아침에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밤잠을 설치는 일이 없는 아주 소박한 평균율의 행복이다.
오늘도 한 건의 계약이라도 더 만들어내기 위해 언 발을 구르며 추운 새벽시장을 누볐을 신입 설계사의 눈빛이 지금 이 순간에도 또렷이 떠오른다.
<김동원기자>davi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