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이대로 좋은가] 차세대 주도산업 무엇인가

  • 입력 2001년 3월 7일 18시 49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승용차 한 대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시간. 미국의 GM(28.8시간) 다임러크라이슬러(30.2시간)보다 훨씬 짧고 일본 토요타(22시간) 미국 포드(23.9시간)와 비슷하다. 물량 기준으로는 시간당 노동 생산성이 세계 최고 수준인 셈.

그러나차 100대를 만들었을 때 3개월 안에 발생하는 결함 수는 194개(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발표)로 토요타(135개)와 BMW(125개)는 물론 미국 자동차회사의 평균치(167개)보다도 많다. 한국 제조업체의 양적 경쟁력과 질적 경쟁력이 전혀 별개인 것이다.

▽눈에 띄는 연구개발(R&D) 노력〓물론 한국기업들도 기술 개발을 외면하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 삼성이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제품은 반도체 D램 및 S램 칩과 초박막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TFT―LCD), 컴퓨터모니터, 브라운관, LCD용 코팅유리 등을 합해 12개. 삼성은 올해에만 전자분야에서 7조7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R&D에 주력해 2005년까지 30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LG전자도 올해 R&D에만 작년보다 20% 증가한 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현대자동차도 올해 투자액 1조3500억원 가운데 70%가 넘는 9500억원을 R&D에 쓰기로 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 전체적으로는 기술개발이 뒷전인 것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경쟁력 키우는 산업정책 절실〓정책부재가 더 큰 문제다. 진념 경제부총리는 작년 8월 재정경제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앞으로는 금융과 산업을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업 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일본 부품소재 산업을 국내에 유치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이 발언은 정부가 금융 일변도의 정책 편향성에서 벗어나 제조업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벤처 열풍의 와중에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 했던 제조업체들은 분위기를 바꿀 만한 대안이 조만간 나올 것이라며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후속 대책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기업에 대한 규제가 여전히 많은 것도 문제다. 섬유업체인 휴비스의 조민호 사장은 “미국에서는 표준규격인 UL마크를 따는 데 2∼3개월 걸리는데 반해 한국에서 KS마크를 따려면 행정 절차 때문에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도산업을 특화해야〓차세대 주도산업이 없다는 사실이 한국의 제조업이 처한 가장 심각한 어려움이다. 제조업체는 단순한 한 기업만으로 볼 수는 없다. 연관효과 때문이다. 자동차의 경우 관련 고용인원은 완성업체 보험업계 렌털업계 카센터 등을 합해 147만명으로 추산된다. 한국 정부의 연간 세수(稅收)중 17.4% 가량을 자동차 관련세가 차지한다. 고용유발 효과를 감안할 때 자동차 산업이 무너지면 고용시장에 일대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철강 석유화학 등 다른 기간산업도 마찬가지.

세계시장은 날이 갈수록 경쟁에서 지면 먹히고 마는 ‘정글법칙’이 힘을 얻고 있다. 차세대를 이끌 주력산업, 경쟁력 있는 제조업이 없다면 산업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승록 연구위원은 “여러 기업의 평균치를 끌어올리려 애쓰다 보면 하향평준화라는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주력산업의 전선을 좁혀 앞서 가는 업체가 더 잘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재·김동원·하임숙기자>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