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진 DJ경제브레인 '중경회 멤버들'

  • 입력 2001년 3월 8일 18시 39분


이선씨,김태동씨,이진순씨(왼쪽부터)
이선씨,김태동씨,이진순씨(왼쪽부터)
현정부 출범초기 주요 경제정책 방향은 행정부 공식라인보다 일부 학자출신 그룹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많았다. 이 때문에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적잖은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중경회(中經會)’란 모임이 경제부처와 재계, 언론계에서 주목받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중경회’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야당시절부터 그의 경제브레인 역할을 했던 일부 ‘개혁성향’ 학자그룹의 모임. 경제성장보다 분배와 형평을 중시하는 10여명의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92년 대통령 선거 직전 만들어졌다. 97년 대선 때는 일부 관료 등도 참여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중경회 멤버들은 정부요직과 국책연구원장 등으로 속속 진출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김태동(金泰東)성균관대 교수가 대통령 경제수석 및 정책기획수석비서관에 발탁된 것을 비롯해 윤원배(尹源培)숙명여대 교수가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에, 이진순(李鎭淳)숭실대 교수가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에 각각 임명됐다. 이 밖에도 △김성훈(金成勳) 전 농림부장관 △이선(李`) 전 한국산업연구원(KIET)원장 △장현준(張鉉俊)에너지경제연구원장 △신봉호(申鳳浩) 전 청와대 정책3비서관 등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99년 중반부터 상당수가 이런저런 이유로 차례차례 ‘낙마’해 학계 등으로 돌아갔다. 김태동 수석은 재벌과 고위 경제관료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 등 ‘설화(舌禍)’로 청와대를 떠났고 이선 원장은 여직원 성희롱 시비로 물러났다. 윤원배 부위원장과 신봉호 비서관도 조직 내 마찰 등으로 경질됐다. 최근 정부와의 불화설이 나돌던 이진순 원장은 7일 새 원장 선임투표에서 강봉균(康奉均) 전 재정경제부장관에게 패해 연임에 실패했다.

중경회 멤버들의 영향력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힘’은 이들이 공격대상으로 삼았던 전문 경제관료들로 옮겨갔다. 현재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진념(陳稔)경제부총리, 이기호(李起浩)경제수석, 전윤철(田允喆)기획예산처장관, 이남기(李南基)공정거래위원장, 이근영(李瑾榮)금융감독위원장은 오랫동안 경제관료로 잔뼈가 굵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경회의 ‘퇴조’ 원인으로는 관료를 개혁의 대상으로만 보고 동반자로 끌어들이지 못해 조직 내 불협화음과 업무차질을 빚은 점 등이 거론된다. 연쇄퇴진에 대해서도 ‘보수적 관료집단의 저항에 학자출신 개혁그룹이 무너졌다’는 동정론과 ‘이론만 있고 현실감각과 포용력이 떨어져 당연히 교체해야 했다’는 시각이 엇갈린다. 이들의 부침(浮沈)과 영욕(榮辱)은 진보적 개혁 이상이 이를 실천할 정교한 전략 및 추진력과 손을 잡지 못할 때 어떤 한계를 나타내는지를 보여준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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