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차. 전화를 끊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로 나를 찾는 전화였던 것이다. 그래, 내가 PD지.
우리 회사에서는 올들어 PD라는 직책이 생겼다. 이전에는 대리, 과장같은 계층화된 호칭을 쓰거나 브랜드 매니저라는 한국에서는 좀 어색한 외국식 직책을 그대로 썼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각자 맡은 브랜드를 단순히 ‘관리’하는 게 아니라 ‘기획하고 연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브랜드 PD를 쓰기로 한 것이다.
여전히 어색하기는 하다. 나를 부르는데 잘 못알아듣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웹마스터에서 발전한 웹PD도 있고, 브랜드 매니저보다는 브랜드PD가 한 수 위인 셈이어서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소비재 가운데 화장품만큼 브랜드의 이미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까다로운 제품도 없는 것 같다. 소비자는 상품이 아닌 ‘아름다움’이란 ‘꿈’을 사기 때문이다. 그만큼 브랜드 관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장품 회사가 저마다 자기의 브랜드 체계를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브랜드PD로 일한다는 것이 단순한 일은 아니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제품을 기획하고 그 결과물을 또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맡은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이렇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기본 구도를 갖고 디자인 생산 마케팅의 모든 과정을 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짜 PD처럼 모든 일을 기획하지만 ‘큐사인’을 받은 소비자는 감독의 명령에 따라 연출되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판단력과 감각은 그래서 PD의 필수조건이다.
관리가 아닌 연출이라. 이것은 일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생활 자체에 중요한 관점인 것 같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따라 관리하는 인생보다는 새로운 것을 연출하는 적극적인 인생이 더 가치있다는 것만은 틀림없으니까. 어느 광고 카피처럼 우리 모두 ‘내 삶의 주인공은 나’이지 않은가.
브랜드PD에게 NG나 재방송이란 없다. 생방송 인생이므로 생활이 더욱 활기차다. 라네즈를 통해 ‘늘 새로운 나’를 꿈꾸는 소비자가 있는 한 나는 오늘도 분주히 뛰어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