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삼성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흑자를 냈다. 현대의 부진과 대우의 몰락으로 생겨난 공백을 삼성이 메우면서 재계 판도가 삼성을 중심으로 새롭게 짜여지는 양상이다. 그러나 재계 학계 일각에서는 '지나친 삼성의 독주'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삼성은 삼성대로 곤란할 때가 많다. 온갖 단체에서 후원해달라고 손을 내미는 등 책임이 커지고 있는 것.
▽경영실적 승승장구 = 66개 삼성 계열사가 지난해 세금을 모두 내고 남긴 순이익은 삼성전자의 6조원을 포함해 모두 8조원.
이익 규모에 비례해 덩치가 불어나면서 삼성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삼성의 지난해 매출은 110조원이며 수출은 320억달러로 국가 전체 수출액의 18%에 이른다. 삼성의 무역흑자는 125억달러이며 지난해 삼성이 낸 세금은 7조원으로 국가 조세수입의 8%를 웃돈다.
▽성공 비결 = 삼성이 대호황을 누리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키운 결과. 물론 경쟁그룹들의 잇단 몰락도 삼성의 성공 요인이긴 하지만 삼성 특유의 인재 제일주의 와 시스템중시 경영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거두기 어려운 성과다.
삼성은 반도체 D램과 박막액정표시화면(TFT-LCD), 컴퓨터모니터 등 12개 제품에서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전자 계열사를 주축으로 증권 보험 건설 등 다른 곳에서도 고르게 약진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건설 부문은 지난해 2만여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해 1위로 올라섰고 정부 공사수주에서도 30년가까이 선두를 지켜온 현대건설을 제치고 처음으로 수위를 차지했다. 삼성생명은 작년말 계약자 1000만명을 넘어서 교보와 대생을 크게 앞질렀고 손해보험과 증권업계에서는 삼성화재와 삼성증권이 선두에서 질주하고 있다. 민간연구소 가운데도 삼성경제연구소가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때 선의의 경쟁을 벌이던 대우경제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 등도 선두에서 멀어졌다.
▽ '삼성 앞서기' 어떻게 봐야 하나 = 재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서열 1,2위를 다투던 현대를 대신해 삼성을 견제할 만한 대안이 없다는 점. 경쟁그룹들은 물론이고 정부조차도 삼성의 독주에 대해 이렇다 할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일부 관료들은 "한 기업이라도 잘 되도록 계속 밀어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공공연히 얘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삼성이 잘한다기보다는 다른 기업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라며 "재벌개혁 논쟁으로 삼성의 발목을 잡으면 우리 기업 전체의 하향평준화를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병폐인 '경제력 집중'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촉구하는 관계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참여연대 장하성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삼성이 수뇌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흔들리면 나라 경제가 타격을 받게 된다"며 "삼성의 경영투명성이 무엇보다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