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시 공정위 '작품'인가…외압의혹 5가지

  • 입력 2001년 4월 9일 18시 36분


“외압은 일절 없었다.”(공정거래위원회 고위관계자)

공정위는 신문고시(告示) 제정과 관련해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문고시 추진 과정을 분석해 보면 이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공정위 주장에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정황증거 때문이다.

▽진념(陳稔) 재경부장관의 ‘부당내부거래 조사’ 발언 파문〓지난해 12월 6일. 재정경제부 출입기자들은 한동안 술렁거렸다. 국회 출석으로 바쁜 와중에 진념 장관은 기자단과 오찬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언론개혁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진장관은 “요즘 경제가 어려운데 신문사 광고사정이 어떠냐”며 운을 뗀 뒤 “신문사에 대해서도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발언했다. 진장관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경제가 어려운데 신문사 무가지(無價紙)야말로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출입기자들이 기사화할 움직임을 보이자 신동규(辛東奎)공보관을 통해 “장관이 ‘농담도 못하나’라고 해명했다”고 알려 불씨가 꺼졌다. 적어도 12월 초순 이전에 공정위의 대(對)언론사 조사와 신문고시 제정이 정부 내에서 광범위하게, 조직적으로 검토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1월 29일 공정위의 청와대 업무보고 때 위원장 격려〓1월 29일 있었던 공정위의 청와대 업무보고 때 ‘클린마켓 프로젝트’가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당시 보고자료에는 의료 제약 통신 등 5∼6개 업종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 보고자료에 언론사는 명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언론사 조사계획 보고가 들어갔다는 게 공정위 내부 관측.

이 자리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남기(李南基) 위원장을 중심으로 올 한해도 열심히 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경제팀 개각 여부를 놓고 경제부처 장관들이 눈치를 살피고 있던 때여서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가 이위원장 연임을 암시했다고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가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당시는 진념 장관도 유임 여부를 알지 못해 초조해하는 상황이었는데 대통령의 이 말은 공정위원장 연임을 사실상 알려준 것”이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신문사 조사 시작 나흘 만에 ‘고시부활’ 전격 선언〓2월 12일 동아 조선 중앙 한국일보 등 4개 신문사에 대해 불공정거래 조사에 착수한 공정위는 조사 시작 나흘 뒤인 2월 16일 신문고시 부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사 조사와 신문고시 추진이 같은 궤로 진행되고 있음을 프로젝트 출발 때부터 드러낸 것. 공정위는 6개 업종 클린마켓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신문사의 경우 조사와 고시제정이 동시에 이뤄진 것.

▽일부 규개위원 ‘공정위도 하고 싶어 하겠나’ 동정론〓신문고시에 대해 부정적인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들은 3월 28일 열린 1차회의에서 고시 폐지 후 2년 만에 다시 고시를 부활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또 신문업계 자율에 맡겨둘 경우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따져 물었다. 공정위는 1차회의뿐만 아니라 4일 열린 2차회의에서도 설득력 있는 이유를 대지 못했다. 규개위 한 민간위원은 “사실 공정위도 이미 없앤 고시를 살리고 싶어서 살리겠나”며 중립을 지켜야 할 공정위가 ‘정치적 입김’을 받고 있음을 강력히 내비쳤다.

▽이위원장 ‘내부 입단속’ 지시〓공정위 신문고시를 주도하고 있는 실무국장은 안희원(安熙元) 경쟁국장이며 실무작업은 한영섭(韓榮燮) 과장이 이끄는 경쟁촉진과가 맡고 있다. 대(對)언론사 조사는 이한억(李漢億) 조사국장이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조사국 산하 4개반으로 나눠 조사기획과(과장 김범조·金範祚) 조사1과(과장 정병기·鄭秉驥) 조사2과(과장 이석준·李錫準) 및 독점관리과장(김길태·金吉泰)을 차출한 별도반까지 동원한 상태. 또 클린마켓 프로젝트 싱크탱크 역할은 허선(許宣) 정책국장이 대부분 맡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공정위 1급인 조학국(趙學國) 사무처장이 총대를 메고 있다. 이위원장은 내부 잡음이 새나가지 말도록 조사국과 경쟁국에 엄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실무과에서는 ‘동아일보 출입기자 출입금지’ 명패를 달아놓고 취재를 방해하고 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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