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20일 충남 천안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여야정(與野政) 경제 토론회는 한때 서로의 견해가 엇갈려 토론이 중단될 뻔한 위기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노타이 차림의 참석자들은 가나다순으로 섞여 앉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여야(與野) 공방〓한나라당 의원들은 정부가 건강보험과 실업대책 등 사회보장 부문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지적, 이념논쟁식 토론이 벌어졌다.
한 의원은 “정부가 재정 형편을 감안하지 않고 무리하게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있다”며 “경제가 어려우니 교조주의적 개혁에서 벗어나 긴축적 운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정부가 영향을 미치는 금융기관 등이 늘어나고 있는 데 대해 “우리나라가 사회주의냐, 공산주의냐, 아니면 교조주의냐”라는 추궁도 있었다.
이에 민주당측은 “시장 경제는 일정한 규율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며 “공적자금 투입도 과거 정권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한 의원은 “대우에 28조원이 들어갔는데 이는 한나라당 정권 때 저질러놨던 것”이라며 “정부도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정부 주식을 매각하는 등 민영화를 추진해 정부 영향을 축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정(與政) 공방〓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丁文建) 전무와 금융연구원 정해왕(丁海旺) 원장이 경제동향 등에 대해 기조발제를 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이들은 ‘하반기 경기 회복세에 비춰 경기부양책보다는 구조조정에 더욱 전력해야 한다’거나 ‘공적자금 추정손실액이 80조∼90조원에 달하며 추가투입이 불가피하다’는 등의 대목을 문제삼았다.
기업 규제 대목에선 한 의원이 “신문고시니 뭐니 하며 도대체 이게 뭐하는 거냐. 공정위가 기업들 조사한다는 데 6월초까지 끝내라”고 촉구, 진념(陳稔) 경제부총리가 “최대한 빨리 끝내겠다”고 답변했다.
▽합의문 진통〓19일 오후 4시부터 시작된 토론이 20일 0시40분경 일단락되자 여야 의원들은 합의문 작성에 돌입했으나 쉽사리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여야와 정부측은 결국 일단 헤어졌다가 오전 6시에 각자 합의문을 따로 만들어 서로 교환한 뒤 단일 합의문 작성에 들어갔으나 국가부채 범위 등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자 “만난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으니 차라리 합의문을 작성하지 말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가 크니 어떻게 해서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 돌아 3자 대표는 20일 오전 10시45분에야 최종 합의문에 합의했다.
<송인수·윤영찬·최영해기자>issong@donga.com
▼민주당 브리핑-일문일답▼
민주당 강운태(姜雲太) 제2정조위원장은 20일 여야와 정부와의 합숙토론회 내용을 브리핑하면서 “허심탄회하게 토론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문답 요지.
-총평을 해달라.
“현 경제상황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상당한 인식차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것을 정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가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국가채무 문제였는데 한나라당의 어떤 의원은 1000조원, 어떤 의원은 600조원이라고 주장하더라. ‘근거를 대라’고 하자 통안증권이나 보증채무 등을 모두 계산하면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다. 국제기준이 있는데….”
-현대나 대우차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나.
“대우차 문제는 언급이 없었고 현대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의혹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더라. 정부가 현대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얘기하자, 반론이 없을 정도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은 모든 규제와 규율을 푸는 게 좋다는 방침인 반면, 우리는 기본적인 규제와 규율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토론회를 또 할 것인가.
“필요하다면 또 할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인 시기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한나라당 브리핑-일문일답▼
한나라당 이한구(李漢久) 의원은 20일 여야와 정부의 합숙토론회 후 “우리쪽 제안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지만 토론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문답 요지.
-총평을 한다면….
“하룻밤 새운 것치고는 잘 됐다. 그러나 기대한 만큼 협력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이견이 가장 컸던 쟁점은 무엇인가.
“시장경제 원칙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해서 시장경제 원칙이 후퇴했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부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관의 비중이 커진 게 바로 시장경제의 후퇴이다. 정부의 자의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심하고 자본주의적 성격을 벗어난 측면이 있는 게 아니냐는 논의도 있었다.”
-여권이 중시한 대목은….
“국가채무 문제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더라. 우리는 모든 공공기관의 채무를 공표하라고 했으나 (여권은) 그럴 수 없다고 반대하더라.”
-합의문에 부실기업 실사 문제는 빠졌는데….
“실사 및 실사 결과 발표 여부에 대해 의견이 맞서 결국 합의문에 반영하지 못했다.”
-재벌 규제에 대해서는 어떤 논의가 있었나.
“국제기준에 못 미치는 몇 가지 규제는 없애야 한다는 데 대해 일부 민주당 의원도 공감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