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정책 파행 실태]3억들여 만든 계획 4년간 방치

  • 입력 2001년 5월 24일 18시 25분


24일 공개된 ‘에너지절약 및 이용합리화시책 추진실태’에 대한 감사원 특별 감사결과는 충격적이다.

에너지수입의존도가 97.4%(2000년 잠정치)일 정도로 취약한 에너지구조를 갖췄으나 국민 1인당 에너지소비율은 폭증하는 우리 현실에서 이를 타개하려는 정부의 에너지정책 역시 허점투성이로 수립 운용돼온 것.

이번 특감에서 밝혀진 서투른 정책운용의 세부 내용과 이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살펴본다.

▽피해는 국민 몫〓지난해 7월 산업자원부는 재정경제부 등 8개 부처와 협의를 거쳐 경유 등유 중유 수송용LPG의 소비자가격을 올해부터 2006년까지 단계적으로 휘발유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에너지가격 구조개편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자영업자나 LPG차량 소유주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산 이 방안은 불합리한 조사를 토대로 추진된 것으로 드러났다. 가격산정 기준을 한국석유공사가 표본 집계하는 전국 주유소와 충전소의 판매가가 아닌 SK㈜의 직영 주유소 판매가로 한 것. 결국 소비자들은 2006년까지 ℓ당 3∼42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또 산자부는 99년 한국가스공사의 천연가스(LNG) 도매요금 조정을 승인하면서 요금과는 상관없는 한국가스공사의 자산재평가차액을 원가에 산입한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는 등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결국 원가보다 ㎥당 6.53원이 높게 책정됐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그 결과 국민은 1년 평균 998억3600만원을 더 내야 했다. 이어 정부의 감시 부재로 국내 정유사들이 수출에서 발생한 손실을 국내 소비자가격에 전가한 사실도 밝혀졌다. 감사원이 SK㈜의 원가를 분석한 결과 99년 한 해 동안 SK는 수출로 발생한 손실 3609억여원을 국내 판매로 보전한 것.

이번 특감결과를 공개한 국회 산업자원위 김방림 의원은 “국내 석유시장에 불공정거래가 판을 치는 등 유가자유화의 근본취지가 무색한 실정”이라며 “석유가에 대한 적정한 평가기준과 상시감시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마저 제대로 안 지켜〓정부가 추진중인 에너지절약 시책을 공공기관마저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서울 등 5개 시도는 3억7900만원을 들여 에너지절약에 관한 연구를 해놓고도 4년 이상 방치했고 부산 등 7개 시도는 지자체에서는 시행할 수 없는 전국 천연가스공급망 구성 등의 ‘야심에 찬’ 내용을 담은 지역에너지계획에다 연구비 8억4500만원을 쏟아 부었다.

강남구 등 18개 기관은 적정 냉난방온도을 지키지 않았고 국립경찰병원 등 49개 기관은 에너지절약사업 타당성 검토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했는가 하면 기업은행 등 17개 기관은 경차를 단 1대도 구입하지 않는 등 ‘공공기관 에너지절약 추진 지침’을 어긴 사례가 많았다.또 서울시 등 78개 기관은 보일러 설치기준을 지키지 않거나 단열을 하지 않는 등 에너지관리기준 이행률은 56%에 불과했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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