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부과 高法서 패소 '벼랑끝 공정위'

  • 입력 2001년 7월 4일 18시 37분


공정거래위원회가 잇따른 악재로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무리한 법적용을 하다가 재판에서 져 공신력에 상처를 입는가 하면 이남기(李南基) 위원장은 임기의 적법성 논란에 휘말려 있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20년 공정위 역사상 최대의 위기”라고 우려했다.

▽무리한 법적용으로 패소〓서울고등법원은 삼성SDS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낸 행정소송 선고공판에서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158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잘못”이라며 공정위 패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재용(李在鎔)씨 등이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팔아 이익을 얻었을 수는 있지만 이것과 공정거래법 위반은 별개”라며 “그들이 속한 시장에서 경쟁사를 배제할 만한 유리한 지위를 확보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은 대법원에서 내려지겠지만 판결이 이대로 확정되면 공정위의 유사한 결정에 대한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언론사에 대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를 둘러싼 법적 대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서울행정법원이 이남기 위원장의 임기를 둘러싼 행정소송에서 “연임 제한규정에 저촉되는 사람을 임명한 것인지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라는 판결을 내린 것도 여진(餘震)을 남길 전망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를 둘러싸고 터져나온 악재들

사안진행상황
삼성SDS 과징금
소송 패소
-서울고법, 삼성SDS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이재용씨에게 신주인수권부사채(BW) 싸게 팔아 공정거래법 위반했다고 주장한 공정위 패소 판결
-재판부, “공정거래법 적용은 무리”라고 판결
언론사 부당내부 거래 조사에서 회사별 형평성 논란-공정위, 한겨레신문의 계열사였던 한겨레리빙을 조사대상에서 제외
-공정위 1차해명에서 ‘청산기업은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매기지 않는다’고 주장
-대우 계열사 부산매일신문에 부당지원을 이유로 대우차에 과징금 부과 확인됨
-공정위, “1차 해명자료는 실무자의 실수”
언론사 부당내부거래 조사시 부가가치세 포함 논란-부당지원 금액에 부가가치세 포함해 과징금 부과
-99년공기업조사 등에서 부가가치세 빼고 과징금 매긴 사실 확인돼 형평성 논란
이남기위원장
임기문제
-한나라당, 공정위 위원장 임기 3년이며 1차 연임 가능하다는 구 공정거래법 규 정에 따라 이남기 위원장 임명은 불법이라며 행정소송제기
-서울행정법원, “공정위 위원장 임명은 법원의 사법심사대상”
약사외 약국개설허용검토 보고서 파문-공정위, ‘약사외 약국개설 허용검토’ 보고서를 3일 홈페이지에 게재
-약사, 한약사들의 항의 예상되자 3일 오후 급히 삭제
-공정위, “포괄적 시장개선대책 이전에 나온 아이디어로 검토할 계획 없다”고 해명

▽자의적인 언론사 조사의 후유증〓공정위는 언론사 조사 과정에서 한겨레신문 계열사였던 한겨레리빙에 대해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형평성 논란을 자초했다. 공정위는 “청산기업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매기지 않는다”고 해명했다가 이런 기업에 대해서도 조사해 과징금을 물린 사실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거짓 해명’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99년 공기업 조사 등에서는 부가가치세를 빼고 과징금을 물려왔으나 언론사 조사에서는 부가가치세를 포함시켜 ‘부풀리기식 언론조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밖에 의약분업과 관련, ‘약사외 약국개설 허용검토’라는 민감한 내용을 공정위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파문이 커지자 급히 지우고 공식 부인했다.

▽문제의 본질은 ‘외풍’〓최근 공정위와관련된 각종 ‘악수(惡手)’는 ‘업무영역 및 조직확대 의욕’의 부산물 성격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치논리 등 외풍에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고려대 경제학과 이만우(李萬雨) 교수는 “언론사 조사논란만 하더라도 조사를 할 수는 있지만 타이밍(시기)과 과정에서 설득력을 잃고 정치적 외풍에 영향을 받는다는 의혹이 생기면서 각종 무리수가 드러나고 전반적으로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또 한 경제단체 임원은 “미국의 ‘반독점위원회’는 경쟁저해부분에 대한 심사, 기업 합병 때의 독과점 판단, 약관심사 등 고유업무만 수행한다”면서 “한국의 공정위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기 쉽고 세계경제의 글로벌화로 의미를 잃은 ‘경제력 집중’에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업무영역을 확대해왔다”고 말했다.

<권순활·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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