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硏 경제정책 비판]'부채비율 200%' 모든 기업적용 무리

  • 입력 2001년 7월 10일 18시 39분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산업연구원(KIET)이 10일 내놓은 보고서는 외환위기 후 정부가 취해온 기업구조조정과 대기업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경제의 핵심주체인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기업규제 추가 완화 논의가 최근 정부와 민간에서 다시 나오고 있는 시점이어서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연구원은 보고서 머리글에서 ‘정부와 업계가 그 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고 나름대로 성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흡한 부분만 지적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나친 규제 위주 대기업정책〓보고서는 30대 기업집단에 대기업정책을 일괄 적용하는 것은 자의성을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경제원칙에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30대 기업집단의 경우 규모에는 큰 차이가 있으나 총액출자제한(25%), 사외이사비율(50%) 등이 획일적으로 적용된다. 4월 기준 30위인 고합그룹의 총자산은 1위인 삼성그룹의 3.6%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상위 그룹이 짊어져야 할 각종 제한을 받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하위 그룹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어 그룹간 경쟁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순자산의 25% 이상을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도 10년 이상 시행됐으나 별 실효가 없다고 지적했다. 선단식 경영관행은 여전하며 이 제도를 엄격히 적용할 경우 추가 출자 여력만 줄어들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총액출자제한 기준을 자본금의 100% 수준으로 완화하는 대신 계열사 출자분에 대한 의결권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

보고서는 시장 규율 확립을 전제로 기업활동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의 활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기업정책을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구조조정 체계의 문제점〓보고서는 외환위기라는 시급한 상황 때문에 충분한 검토 없이 이루어진 정책을 재고 또는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로 무리한 빅딜 탓에 독과점의 폐해가 생기거나 경쟁이 제한되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또 부채비율 200%라는 자의적인 기준을 모든 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한 것이 지적됐다.

기업이 기업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부채로 끌어쓰는 데 어느 정도가 적정 수준인지는 시장과 채권자가 판단할 문제라는 것. 보고서는 구조개혁 성과가 우수하거나 경영자원에 여유가 있는 기업을 차별화해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적자금 투입으로 11개 시중은행 중 8개가, 6개 지방은행 중 3개가 사실상 정부 지배 하에 있다. 이에 따라 채권은행을 통한 구조조정 추진도 그 의미가 반감되고 있다. 정부 개입에 의한 구조조정은 여건의 미비, 시간의 촉박함 등 나름대로 이유가 있긴 하나 결과적으로 시장기능이 작동하는 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구조조정, 성과 측면에서도 한계〓보고서는 그동안 기업구조조정이 산업경쟁력이나 수익성보다 재무 건전성 등이 중시됐고, 주로 채권금융기관 출신이 부실기업 관리인으로 선임돼 적극적인 경영혁신보다 보수적 경영이 많았다고 꼬집었다.

그 결과 구조조정의 관심 대상인 419개 대기업의 경영성과는 1753개 중소기업보다 부채비율 순이익률 등에서 뒤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65개 관리기업은 큰 폭의 적자를 지속하고 있고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 부실기업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영성과가 개선되지 않고 대기업의 투자 감소에 따라 성장잠재력이 후퇴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김상철기자>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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