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금융위기 이후 우리경제의 개혁과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경제운영에 있어서 정부와 민간의 역할에 대한 논쟁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경제위기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가 그 동안 정부의 지나친 관치경제, 관치금융으로 인해 금융기관, 기업 그리고 국민들 모두가 심각한「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되었다는 데 있음을 상기한다면, 정부의 경제적 역할자체도 구조조정의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좌승희원장 강연 전문▼ |
- 1. 경제·사회개혁의 틀: 신제도학파/진화경제론적 시각 |
개혁과 구조조정에 있어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에 있어서의 내생변수와 외생변수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생변수란 민간부문에 대해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경제활동의 여건변수이며, 반면에 내생변수란 외생변수에 의해서 정해지는 경제활동의 여건하에서, 경제주체들의 활동에 의해서 내생적으로 결정되는 변수를 의미한다.
<그림1>을 이용해서 설명하면, 개인과 조직의 의사결정 문제는 민간의 내생변수에 대한 결정문제로서 정부의 영역이 아니라 순수한 민간의 영역으로 볼 수 있는 반면 경제·사회의 경기규칙인 제도의 결정문제는 민간경제활동의 여건 혹은 제약조건으로서의 외부환경 변수를 결정하는 것으로 순수한 정부의 의사결정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국가자원을 서로 나누어 사용하기 위해 민간경제주체들과 더불어 시장에서 경쟁하는 경제주체이면서도, 민간 경제활동의 범위를 결정하고 규칙을 정하는 등 경제여건을 결정하는 일을 한다. 다시 말해 정부는 민간과 더불어 내생변수의 결정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경제 외생변수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정부의 경제정책 역할은 바로 두 번째 기능인 경제 외생변수를 결정하는 기능을 말한다. <표1>은 국가운영에 있어서의 각 분야별 외생변수와 내생변수를 <그림1>에 기초하여 정리해 본 것이다.
<표 1> 국민경제운영에 있어서의 외생변수와 내생변수의 구분
주1) 이 표는 국가 및 경제운영, 금융부문, 기업부문, 개인부문으로 나누어서 전체 국가정 책 운용에 있어서 필요한 외생·내생 변수에 대한 구분을 개략적으로 시도해 본 것 이다. 물론 이러한 구분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으며, 논쟁의 여지도 없지 않겠지만 국가 및 경제 운영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을 개념화하는데 참고자료로 활용 할 수 있을 것이다.
주2) 상위분석단위의 외생변수는 자동적으로 하위분석단위의 외생변수가 됨. 따라서 국민 경제운영에 있어서의 중요도로 보면 상위분석단위의 외생변수가 그만큼 더 중요 하다고 볼 수 있다. 경제개혁이란 대부분의 경우 외생변수를 바꾸는 것을 의미하며, 내생변수는 외생변수가 변하면 순리에 따라 자연적으로 변하게 된다.
주3) 외생변수와 내생변수의 개념은 각각 독립변수 및 종속변수와 같은 개념이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외생변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경쟁에서의 경기규칙이며 이를 통틀어 경제제도라고 부른다. 일국의 각종 경제법·제도와 각종 정책을 통해 규정되는 경제활동의 기본질서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법·제도의 결정은 정치부문의 입장에서는 내생변수이지만 여타 모든 부문에 대해서는 외생변수로 작용한다. 정부의 각종 정책도 정부의 입장에서는 내생변수이지만 여타 부문에게는 외생변수로 작용한다.
한편 최근의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보면 은행부문에서는 소유·지배구조, 대출 건전성 규제 등을 외생변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업부문에서는 금융제도의 성격이나 채권자인 은행의 대출관행과 시장진입·퇴출관련 제도와 정책, 소액주주권 보호와 관련된 제도, M&A제도, 이사회제도와 지주회사제도 등의 기업지배구조를 외생적 제도변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나 대출심사를 얼마나 잘 하느냐의 여부 등과 기업의 부채비율, 다각화 정도, 상호지급보증 등과 기업이 얼마나 열심히 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느냐 등은 내생변수에 해당된다.
이러한 분석틀을 이용하여 기업의 내생적 행태를 결정하는 외생변수의 체계를 정리해 보면 <그림2>와 같다. 기업이라는 민간부문 경제주체는 금융제도, 정부정책, 정치권이 공급하는 법·제도, 일국의 문화 등 외생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고 이들의 제약하에서 생존을 위해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행태를 보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행태란 다른 분야에 의해 영향받는 종속변수로 나타나게 된다.
경제학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외생변수의 변화는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기본행동을 바꾸게 하여 경제의 본질을 바꿀 수 있지만, 내생변수에 대한 규제는 경제의 왜곡을 통해 형식의 변화는 가져올지 몰라도 본질의 변화를 초래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사려깊은 정부는 민간영역에 속하는 내생변수는 가능한 한 자생적으로 결정되도록 시장에 맡기되, 민간경제활동 여건을 조성하는 외생변수를 잘 조절함으로써 민간부문이 보다 효율적으로 경제활동을 해 나가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구조조정이라는 것도 결국은 정부가 외생변수를 잘 개선·관리함으로써 내생변수의 하나인 민간의 경쟁력이 자생적으로 높아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BIS기준을 맞추어 주고 M&A를 독려해서 은행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그려낸다고 할지라도 은행이 처하고 있는, 정부에 의한 금융경영개입 관행과 주주권이 무시되는 소유·지배구조 등 기존의 관치금융적 여건이 바뀌지 않으면 금융기관의 행태는 달라지지 않으며 부실경영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부채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상호지급보증을 금지하고 계열사를 분리해 대기업의 모습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훌륭하게 그려낸다 해도 이러한 내생적 행태를 초래했던 기존의 외생적 조건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대기업의 행태는 또 세월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IMF위기 이후 3년 반을 돌이켜 보면, 그 동안은 내생변수에 해당되는 각종지표만이라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애를 써왔지만, 앞으로는 외생변수와 관련된 경제여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데 보다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림 2> 기업행태를 결정하는 외생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