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30∼40년 동안 우리 나라의 경제발전 과정의 특징은 한마디로 정부가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갖는 ‘정부가 하느님’인 시대였다. 그러나 정부가 기업의 생사를 결정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하느님인 시대에서 ‘시장이 하느님’인 시대로 바뀌고 있다.
시장에는 많은 하느님들, 즉 주주, 투자자, 채권자인 금융기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소비자가 있다. 이제 기업들은 상품시장, 금융시장, 그리고 경영인시장 등 각종 시장으로부터의 감시는 물론 사외이사를 포함하는 이사회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정부도 기업의 생사 여탈권을 가진 것처럼 명령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하느님들’을 키워 그들의 기업 감시능력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하며 또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좌승희원장 강연 전문▼ |
- 1. 경제·사회개혁의 틀: 신제도학파/진화경제론적 시각 |
이에 맞추어 정부의 기업정책도 시장경제원리에 맞게 재정립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경제내에서의 정부와 기업의 역할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하에 정부정책이 할 일과 기업이 해야할 일을 가려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내생변수와 외생변수 혹은 종속변수와 독립변수의 구별을 기업단위의 입장에서 보다 명확히 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림3>은 앞의 <그림1>과 <그림2> 그리고 <표1>에 근거해서 기업의 외생변수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기업의 내부조직은 CEO와 이사회 그리고 주주총회로 구성되며, 기업의 외생적 여건 혹은 기업견제장치는 소비자 혹은 경쟁사업자, 주주, 채권자, 그리고 경쟁CEO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전자의 내부조직을 내생변수, 외생적 견제장치는 외생변수로 정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경영행태를 규율하는 기업지배구조는 크게 외부시장으로부터의 감시(시장규율방식)와 내부조직으로부터의 감시(내부규율방식)가 있을 수 있다.
시장으로부터의 규율방식은 다시 상품시장, 직접금융시장, 간접금융시장, 경영인 시장에 의한 규율방식으로 세분될 수 있다. 상품시장은 기업의 생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평가를 통해 비효율적, 경쟁력 없는 기업을 걸러내는 가장 중요한 기업규율기능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직접금융시장은 주주의 권리행사와 M&A를 통해 경영자를 견제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간접금융시장은 채권자의 여신심사와 더불어 대출채권의 원활한 회수를 위한 사후감독 과정을 통해 경영자 견제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경영인시장은 전문경영인들간의 경쟁과정을 통해 비효율적인 경영자를 시장에서 도태시킴으로써 경영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된다.
반면에 내부로부터의 규율방식에는 그룹 기조실, 구조조정본부나 지주회사와 같은 기업내부의 통제조직, 그리고 기업지배구조 논의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이사회에 의한 경영자 견제기능 등이 있다. 이사회도 결국은 시장의 하느님중의 하나인 셈이다. 이 밖에 기관투자가들에 의한 사외이사 선임 등을 통한 경영통제 방식은 시장규율과 내부규율의 중간형태로 볼 수 있다.
<그림 3> 기업지배구조 모형
정부가 기업의 구조조정을 보다 합리적으로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제도개혁과 규제완화 등을 통해 이러한 기업규율체제가 유기적으로 잘 작동하도록, 다시 말해 시장이 하느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업감시체제, 즉 기업경영 여건을 체계적으로 개선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위의 다양한 규율방식 중에서 어느 부문을 강조해야 하는가? 우선 기업조직이나 이사회 구성과 같은 내부규율방식은 주어진 경제환경과 시장규율방식의 작용 속에서 기업이 선택해야 하는 내생변수에 가깝다. 따라서 기업의 특성에 따라 차별화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경직적인 내부규율방식 규제보다는 외생변수인 기업관련 법·제도의 개혁을 통해 시장규율방식을 활성화하는데 좀더 역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장규율방식의 활성화와 관련해서는 기업의 경영은 최종적으로 제품시장에서 평가된다는 점에서 상품시장에서의 경쟁촉진이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상품시장은 진입 및 가격규제, 대기업의 퇴출억제 시책 등 오히려 경쟁제한적인 정부정책에 의해 왜곡되어 왔다. 그리고 직접금융시장은 그 동안 M&A가 불허되고 기관투자가의 역할에 대한 제약 등으로 기업규율기능이 매우 미흡했으며, 은행 등 간접금융기관도 관치금융 속에서 배태된 자체의 낙후성 때문에 기업경영 감시에 적극 나서지도 못했다. 또한 그럴 유인도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시장에 의한 기업규율기능이 정상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관련제도를 체계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