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경제위기 파장/下]국가경쟁력의 조건

  • 입력 2001년 7월 20일 19시 08분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북극쪽을 향해 3시간을 날아가면 유럽의 외딴 섬 아이슬란드에 이른다. 국토의 74%가 빙하와 화산석 등으로 덮인 이곳의 인구는 서울 금천구와 비슷한 28만여명.

수산업이 주력인 이 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달러 이상, 스위스 국제경영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는 10위 안팎이다.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디코드가 이 나라 기업이다.

아르헨티나는 어떤가. 광대한 팜파스, 인구보다 많다는 소, 풍부한 지하자원 등 천혜의 자원만 잘 관리해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경제위기로 국제경제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전략과 리더십이 중요하다〓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손상찬(孫橡贊)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은 “아르헨티나인들이 메릴린치증권을 통해 미국에서 굴리는 돈만 1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자원과 돈은 있지만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리더십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반면 아이슬란드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전략을 통해 한정된 자원을 극대로 활용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무역협회의 스테판 구존슨 사무총장은 “대부분의 국가가 어족자원 고갈과 어업경쟁력 저하로 고민하지만 아이슬란드인들에게 어업은 변함없는 부의 보고(寶庫)”라고 말했다. 1984년부터 매년 어획량을 사전에 결정하는 쿼터제를 시행해온 것이 비결이다. 해양연구소(MRI)가 광범위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을 만큼 어획량을 정해 통보하면 정부는 이를 거의 그대로 집행해왔다.

디코드의 성공도 유전공학을 차세대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아이슬란드의 전략에서 비롯됐다. 아이슬란드 정부와 의회는 국민의 유전자 및 의료 정보, 가계도 등을 디코드가 대가를 내고 쓸 수 있도록 허용, 세계 어느 기업도 따라올 수 없는 독점적인 경쟁력을 갖도록 했다.

▼글싣는 순서▼
- (上)선심정책 남발하다 나라빚 눈덩이
- (中)무리한 시장개입 경쟁력 약화 불러
- (下)"한국은 미래전략과 리더십 갖췄나"

▽한국의 전략은 어떤가〓전략컨설팅회사인 매킨지는 2010년 한국의 1인당 GDP가 3만1000달러로 세계 6위가 될 것이라고 최근 내다봤다. 여기에는 ‘잘하면’이라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매킨지 이상훈(李尙勳)파트너는 “현재의 국가전략으로는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중화학공업의 설비과잉문제와 미래주력산업 육성에 대해 뚜렷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못하고 있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丁文建)전무도 “앞날을 내다보는 국가전략이 없어 경제주체들이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파트너가 전략 공백중 가장 심각하다고 보는 것은 서비스부문. 매킨지는 올해부터 2010년까지 한국은 1245만7000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파트너는 “이 가운데 70% 이상은 서비스산업에서 만들어내야 한다”며 “GDP 성장도 앞으로는 수출 산업이 아닌 서비스 산업이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이미 3차 산업국가인데도 아직 2차 산업국가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전략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한국은 지금까지 정부가 산업부문에 직접 개입하고 때로는 시장의 역할까지 대신하는 일본의 경제발전모델을 따랐다.

경영전략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5월 공저로 출간한 ‘일본경제 위기보고서’에서 일본식 발전모델에 대한 통념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일본의 가장 인상적인 성공사례들, 즉 자동차 비디오리코더 로봇공학 카메라 비디오게임 등은 경쟁여건에 관한 정부의 간섭이나 보조금이 거의 없었다는 것. 포터 교수는 반면 경쟁력이 취약한 화학 항공기 소프트웨어 금융 서비스 산업 등에는 정부의 간섭이 많았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국제지역원 문휘창(文輝昌) 교수는 “한국은 준선진국이 됐는데도 개도국형의 낡은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며 “모든 전략을 시장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가적 자원을 어떻게 쓸 지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기업이 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천광암기자>iam@donga.com

▼유럽 富國의 국가전략▼

네덜란드는 인구 1590만명에 국토면적은 4만1000㎢로 각각 한국의 3분의 1과 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2만2490달러로 한국의 두 배가 넘고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필립스 유니레버 등 14개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 네덜란드법인 대표인 김동현 상무는 올해초 현지 기업인들과의 한 모임에서 “사람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 뒤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외국인투자청 관계자는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냐. 우리가 책임지고 구해주겠다”며 사업하는 데 다른 애로는 없는지 등을 세심하게 물었다.

김 상무는 “이 나라 공무원을 만나면 관료라기보다는 투자를 한푼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애쓰는 비즈니스맨을 대하는 느낌”이라며 “네덜란드를 부자나라로 키운 일등공신은 바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정부”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핀란드 스웨덴 등 유럽의 부자나라들은 △자국 실정에 맞는 국가발전 모델을 세우고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활력을 키우며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80년대와 90년대 정보통신 분야에 집중 투자해 유럽의 ‘변방’에서 세계적인 정보통신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중은 스웨덴 3.9%, 핀란드 3.1%로 세계 1, 2위에 올라있다.

핀란드는 기업 설립을 활성화하기 위해 96년에 6주 걸렸던 창업기간을 2∼3주로 줄였다.

스웨덴은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동안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24/7 운동’을 정부 차원에서 핵심사업으로 펼치고 있다.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가 세계 1위의 휴대전화 업체인 노키아를 배출하고 스웨덴이 에릭슨 등 세계적 정보통신 업체를 보유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암스테르담〓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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