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 후퇴' 경제계 지적]부실기업 처리 정부가 좌지우지

  • 입력 2001년 7월 24일 18시 50분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경제 개혁’ 추진 방식에 대해 “시장원리에 맡기면 될 일까지 사사건건 정부가 나서는 바람에 오히려 경제 활력을 떨어뜨렸다”고 비판한다.

좌승희(左承喜)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아무리 개혁이 급해도 법과 제도에 입각해 정책을 펴야 하는데 지금까지 정부는 까다로운 법 절차를 지키는 대신 당장 손쉬운 행정력에 의존해 경제 주체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법을 편의적, 자의적으로 집행하는 사례가 쌓이면서 이해 관계자들의 불만이 누적돼 개혁이 당초 의도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

전경련 관계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이른바 ‘DJ 노믹스’의 핵심 화두로 내건 현 정부에서 역대 어느 정권보다 관(官)의 입김이 더 커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경제계는 법과 제도에 어긋나는 대표적인 경제정책 사례로 △정부 주도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업종 특성을 무시한 부채비율 200%의 획일적 적용 △정부의 일방적인 부실기업 처리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좌추적권 연장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수정 통과 등을 꼽는다.

정권 출범 직후 대기업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추진한 빅딜의 경우 해당 업종과 개별 기업의 특성 등을 무시한 채 사실상 정부가 ‘등을 떠밀면서’ 이뤄졌다. 사유재산권 침해의 소지도 크지만 반도체 및 자동차 부문 빅딜의 참담한 현주소에서 알 수 있듯 성과면에서도 대표적인 ‘정책 실패’로 꼽힌다.

부실기업 처리 과정도 법과 제도를 무시한 사례로 꼽힌다. 특히 현대건설 등 주요 부실기업을 처리하면서 정부는 겉으로는 “채권단이 자율 결정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자금지원 여부에 대한 결정을 좌지우지했고 이 때문에 특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공정위가 올 2월로 만료된 계좌추적권(금융거래정보요구권)을 다시 3년간 연장한 데 대해 “정부가 먼저 약속을 위반하는 사례가 쌓이면 경제 주체간의 불신만 깊어질 뿐”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측은 “법률 전문가들이 지나치게 법 조항에 얽매이는 바람에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다”고 자주 불평한다. 그러나 현정부 출범후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이고 이에 대해 기업인 등은 ‘앞에서는 입을 다물지만 돌아서면 불만을 털어놓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고 있다.

<박원재·최영해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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