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과 함께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채권단으로부터 5조원이 넘는 자금지원과 해외자본 1조6000억원을 유치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생 가능성이 매우 불투명해진 것이다.
시장에서는 “내년이 되면 대통령선거 등 정치 현안에 밀려 해결책 마련이 어렵고 결국 차기정권으로 문제를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살아날 수 있을까〓삼성증권은 최근 ‘누군가 죽어야 산다’는 보고서에서 “하이닉스가 정부와 채권단 등 외부지원으로 계속 살아간다면 전체 D램산업과 국내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재정주간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SSB)는 하이닉스의 재무구조개선계획을 작성할 때 반도체가격(128메가D램 기준 환산)을 2.65달러로 가정했지만 현재 1.5달러까지 폭락했다.
하이닉스는 자구노력으로 올해말까지는 버틸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사업 구조로는 내년을 버티기가 어렵다는 것이 중론.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제때 시설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면 가격 및 품질경쟁력이 약화돼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삼성증권은 “하이닉스의 재무상태를 감안하면 올해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용되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의 연장문제가 또다시 대두될 수밖에 없어 금융권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권단의 고민〓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관계자는 “올해말까지 현금부족액은 약 1조5000억원으로 추산되지만 내년까지 버틸 수 있도록 약 2조원 규모의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론되는 지원책은 대출금 및 회사채 이자감면, 신용보증기금 보증을 붙인 하이일드본드(고수익 고위험채권) 발행 등.
그러나 5조1000억원의 유동성지원을 해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자금지원을 들고나올 경우 나머지 은행들이 동의할 리가 없다. 은행들은 SSB 권고대로 전환사채(CB) 1조원을 인수했다가 주가폭락으로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으며 하나은행은 40%를 손실처리했다. 은행들은 추가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이라는 생각이다.
▽차기정권으로 넘어가나〓시장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하이닉스를 망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지금까지도 정부와 채권단 지원으로 연명해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겠느냐는 것.
이에 따라 채권단은 부인하고 있지만 ‘감자 및 출자전환설’이 피어오르고 있다. 반도체업종이 초호황을 누리지 않는 한 차입금 7조원을 안고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감자후 출자자전환을 통해 절대적인 부채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것.
한편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정부가 추가지원할 경우 국내외로부터 거센 비난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그러나 한국정부로서는 금융기관의 여신규모가 커 하이닉스를 파산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한국이 기업경영관행 개선을 세계에 과시하려면 하이닉스에 직접적인 자금지원을 중단하는 등 정책전환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두영기자>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