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별도로 참여연대는 ‘협상 무효’를 주장하며 신주발행가처분신청을 내겠다고 발표, 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였던 현투 매각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정부는 성급한 발표로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했을 뿐만 아니라 정책의 신뢰성에도 타격을 입게 됐다. 또 AIG의 납득하기 힘든 행보도 두고 두고 입방아에 오를 전망이다.
▽AIG의 의도와 의문점〓정부는 한마디로 AIG가 향후 본협상 과정에서 현대증권을 더 좋은 조건으로 인수하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유지창(柳志昌) 금융감독위 부위원장은 “AIG가 협상 당사자인 현대증권에는 공식 의견을 보내지도 않은 채 국내외 언론에만 보도자료를 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AIG가 문제삼은 현대증권 주당 인수 가격은 8940원. 증권거래법상 기준 가격을 산정한 뒤 할인해 줄 수 있는 최대 한도인 10%를 깎아준 금액이다.
현대증권과 정부는 “10% 할인조건을 여러번 AIG측에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AIG측이 변호사까지 대동한 협상을 한 마당에 이 규정을 몰랐을 리 없다”며 AIG측 요구에 황당해 하고 있다.
그러나 AIG측은 “현대증권과 사전 협의를 통해 신주발행가가 7000원 정도일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미국 블룸버그 등 외신은 불과 4일 전까지만 해도 AIG 협상 당사자를 인용해 “현대증권을 주당 7000원에 인수할 것”이라고 보도했었다.
정부측 주장이 맞다면 AIG가 현대증권 지분 인수가격을 낮추기 위해 어거지를 부리고 있다는 얘기지만 AIG측 주장대로라면 현대증권 등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졸속 협상〓AIG측의 의도가 현대증권의 지분을 싼값에 좀 더 확보하려는 어거지라고 해도 정부는 졸속 발표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8개월여만에 간신히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가장 중요한 ‘가격’문제마저 확실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발표를 한 셈이 된 것. 금감위는 “MOU와 현대증권 신주인수가격 협상 문제는 별개이며 본계약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AIG측이 앞으로 어떤 구실을 내세워 계약을 파기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참여연대의 가처분신청〓참여연대측은 시가보다 10%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가 발행돼 주식가치가 희석되면서 현대증권의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통상 지배지분을 넘길 때는 경영권 프리미엄 등으로 순자산가치보다 높은 가격에 파는데 이번 건은 오히려 반대로 됐다는 것. 또 AIG가 매년 5%의 배당을 먼저 받기 때문에 다른 주주들은 남은 배당 가능액 중에서 받는 것도 손해라는 주장이다.
김주영 변호사는 “국민 경제가 걸린 문제라고 하지만 현대증권 주주들이 피해를 볼 이유는 없다”며 “신주발행 금지가처분 신청을 내면 현행 법체계상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정부 졸속 '망신' 자초▼
왜 미국 AIG는 ‘양해각서(MOU) 발표 다음날 협상파기 가능성’을 흘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을까.
금융감독위원회는 24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AIG의 노회한 협상전술일 뿐이며 협상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주변 관측자들은 “협상전술로 보기에는 AIG의 주장이 너무나 당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고위 당국자들이 생색을 내기 위해 ‘곧 발표’라는 말을 섣불리 하는 바람에 실무자가 시간에 쫓겼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실제 진념(陳稔) 재정경제부장관은 21일 한 조찬강연회에서 “매각협상 결과를 오늘 발표할 수 있다. 사실상 중요한 사안은 타결됐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부 내 핵심협상담당자는 불과 몇 시간 뒤 확인과정에서 “진 장관이 오늘 발표할 수 있다니 서둘러 보고 있지만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도 이달초 비슷한 요지의 발언을 했다.
법무법인 소속의 한 변호사는 “진 장관 말대로 AIG 협상에서 큰틀(1조1000억원을 6 대 4 대 1 비율로 3개사에 투자)은 일찌감치 정해졌지만, 잔가지(현대증권 주식의 주당 인수가격)가 남겨진 상태에서 ‘8월중 발표’를 위해 서둘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측 인사는 “문제가 터지면 책임은 서로 미루면서, 일이 성사되면 자기몫으로 가져가려는 정부 고위 관료들의 행태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인사는 “정부가 협상타결을 자축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미국 블룸버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들은 AIG측 코멘트를 인용해 ‘협상타결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