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극복은 재정이 받쳐준 탓〓보고서는 한국이 그동안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외환보유고를 1000억달러 가까이로 늘리고 금융과 기업구조조정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정부가 159조원의 공적자금(공공자금 등 포함)을 투입해 부실을 털어줬기 때문이라는 것.
문제는 이처럼 많은 돈을 투입했는데도 아직도 구조조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선진국의 경기침체와 함께 아르헨티나 러시아 동남아국가들의 경제불안이 겹쳐 한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
중앙정부가 안고 있는 빚이 이미 100조원을 넘어섰고 기업과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정부가 발행한 지급보증채권(예금보험공사채권, 부실채권정리기금)은 확정채무가 아닌 잠재적인 채무라는 점에서 앞으로 나라 재정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1, 2차에 걸쳐 조성한 공적자금 159조원 중 137조원이 이미 투입됐고 나머지 32조원은 연말까지 금융기관에 지원된다.
차기정부가 들어서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95조4000억원의 공적자금을 갚아야 하는 만큼 나라살림에는 더욱 주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다 해마다 늘어나는 복지부문의 예산증가도 ‘복병’이다. 경제위기 이후 실업급여 국민기초생활보장 등 각종 사회안전망을 늘리면서 현실적으로 복지지출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의 부실도 재정수지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전승훈(全承勳) 조세연구원 부원장은 “공적자금이 절반가량 회수된다 해도 80조원은 나라가 떠안아야 할 판”이라며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졸업했다고 해도 나라살림이 안 좋아 위기가 오면 마땅한 정책수단이 없다는 것이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건전재정에 눈 돌려야〓보고서는 앞으로 건전재정을 확보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언제든지 빚으로 둔갑할 수 있는 우발채무가 쌓여 있으므로 나라살림을 건전하게 운용하지 않을 경우 다시 위기로 빠질 수 있다는 것.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위기 때는 재정이 안전판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재정기능을 살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2003∼2006년에 집중된 공적자금 상환스케줄에 대비해 회수노력을 극대화해 국민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정의 건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규모로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은 당장 인기를 끌지는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나라살림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박기백(朴寄白)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무분별한 비과세나 감면 혜택을 줄이고 담배나 주류 소비세를 무겁게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해기자>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