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를 고르는데 까다롭기로 이름난 삼성전자에 공장자동화설비를 납품하면서 한 해 매출 25억원을 올리던 에이멕스가 휘청거린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1월초. 삼성전자가 더 이상 공장설비를 더 이상 늘이지 않겠다는 통보를 해 온 것.
하루아침에 일감이 없어진 신 사장은 직원 22명 전원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문을 닫느냐,네다섯명으로 직원을 줄이느냐,전원이 남아 끝까지 버텨보겠느냐는 3가지 방안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직원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뛰면 살수 있다는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길을 택했다.달리 길도 없었다. 전원이 보너스를 전액반납하고 월급도 20% 깎았다. 그리고 유일한 돌파구인 신제품개발에 매달렸다. 신 사장은 “신혼이던 직원들도 기숙사생활에서 밤샘을 하면서 제품개발에 온 힘을 다 쏟아 부었다”며 “이 때 다져진 인간적인 신뢰가 지금도 우리 회사 최대의 자산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5개월의 강행군 끝에 나온 작품이 완전 국산 색채선별기. 오래돼 색깔이 누렇게 변한 불량낟알을 자동으로 골라 청결미로 만들어주는 기계다.빠르게 지나가는 낟알을 카메라로 찍고 이를 감지한 다음 공기총이 1초에 600번씩 공기를 쏘아 불량미를 골라내는 첨단제품.
제품은 나왔지만 처음부터 영업이 될 리가 없었다. 영업사원들은 주요 고객인 농협과 대형정미소를 찾아다니며 공짜로 써보고 좋으면 사달라는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얼마안가 일본제품보다 훨씬 싸면서 성능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날개돋힌 듯 팔렸다.
올해 국내에서 팔린 색채선별기의 절반이 에이멕스 제품이다.
신 사장은 “앞으로 노후화된 일본 제품들 대부분이 국산 신제품으로 대체될 것”이라며 “올해만 70억원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2배이상 판매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올 여름 내놓은 아이스크림자판기, 자동명함 자판기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 또 한창 마무리작업중인 신제품 3가지도 연말까지 개발을 마쳐 내년초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올해를 새출발의 해로 정했다. 사업을 시작한지 8년만인 지난달 시화공단에 3층짜리 공장을 마련했다. 내년에는 해외시장개척에도 본격 나서 매출의 절반이상을 수출로 올린다는 청사진을 그려놓고 있다.
신 사장은 경영보다는 직원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신제품개발할 때가 훨씬 재미있다고 말하는 타고난 ‘기계꾼’. 그는 “요즘 제조업을 하는 중소기업들이 어렵다고 하는데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으면 얼마든지 길이 있다”며 “여기에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은 직원이 있는 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며 힘주어 말했다.
<김광현기자>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