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반도체 탈출구 없나-상]성장엔진 바꿔야

  • 입력 2001년 10월 25일 19시 21분


《한국경제를 이끄는 엔진 가운데 하나인 반도체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원가의 30% 미만까지 떨어져 있는 반도체 가격이 내년 하반기까지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데다 미국과 일본의 통상압력까지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저급(中低級) 기술로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는 반도체장비 업체들도 D램 경기 부진으로 고전 중이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위기 극복 방안을 3회 시리즈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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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닉스 순환무급휴직등 고강도 구조조정

1999년 중반까지만 해도 컴퓨터 메모리칩으로 쓰이는 128메가SD램(PC 133)은 1개에 20달러에 팔렸다. 제조원가가 3∼4달러였으니 반도체 설비는 그야말로 ‘돈 찍어내는 기계’였던 셈. 하지만 정보기술(IT) 수요가 격감한 요즘에는 평균 1.01달러까지 떨어졌다. 100원어치를 팔면 60원 이상을 밑진다는 계산이다.

가트너 데이터퀘스트 등 세계적인 IT 조사기관 등은 내년 4·4분기(10∼12월)에나 D램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때까지는 국내 반도체 기업이 예전처럼 ‘효자노릇’ 하기는 어렵다는 전망.

반도체 가격 폭락 후 여전히 자금난에 쪼들리는 하이닉스반도체와 사상 처음으로 3800억원의 분기 영업손실을 본 삼성전자의 운명은 사실상 D램 가격 변화에 달려 있다. 그나마 삼성은 그동안 모아둔 자금과 비(非)메모리 부문으로 라인을 바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하이닉스는 투자 재원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속병’만 깊어가고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가 승부수〓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생산비중이 높은 D램은 메모리 반도체로 이미 95년부터 물량이 넘쳤다. 인텔과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이 메모리 부문을 포기하고 비메모리 쪽으로 발길을 돌린 것도 이 때부터다. 최근에는 물량이 줄지 않은 채 수요가 격감하면서 가격이 폭락하자 도시바 등 일본 업체들은 메모리 설비를 시장에 내놓았다.

비메모리칩 생산 비중을 늘려온 삼성전자는 2010년까지 비메모리 비중을 50%로 높여 부가가치가 높은 스마트카드칩과 구동IC 등을 세계 1위로 올려놓는다는 계획. 업계 전문가들은 삼성의 풍부한 시스템 노하우와 잘 갖춰진 생산 인프라가 이 계획을 성사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투자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 메리츠증권 최석포 연구위원은 “비메모리 분야는 표준화된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정보기술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제품화해야 한다”며 “하이닉스가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장기적 경쟁력을 갖추려면 연간 최소 1조원 이상의 신규투자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보증권 김영준 책임연구원은 “생산라인(FAB) 없이 비메모리 반도체를 설계만 하는 벤처기업이 늘어나야 국가적인 비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대만과 일본처럼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육성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일 통상압력 어떻게 대처하나〓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하이닉스를 밀어붙이기 위해 한국 업체들을 반(反)덤핑 혐의로 제소할 경우 우리 업계의 패소 확률은 매우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경우 하이닉스는 고율의 덤핑관세까지 물어야 해 사실상 미국시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우증권 전병서 연구위원은 “하이닉스를 살려야 한다고 판단할 경우 채권단이 빨리 신규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하이닉스가 경쟁력을 회복해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제품을 팔지 않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최영해·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국내 반도체 업계가 직면한 위기 상황
내용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
반도체 경기 침체제조원가(128메가SD램 기준, 삼성 평균 3달러, 하이닉스 3.5달러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현물시장 가격(1.01달러)
영업적자 지속3·4분기 3800억원 영업손실
내년 상반기까지 적자 지속 우려
매월 1500억원씩 쌓여가는 영업적자
11조원대의 부채와 자금난 여전
통상압력 가중NEC 히타치 도시바 미쓰비시 등 일본 반도체 업체 반덤핑 제소 방침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국내 채권단 지원 WTO 협정 위반 제소 임박
신규 설비투자 부진신규 설비투자 축소 긴축경영투자재원 마련 못해 기술 낙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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