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경기침체로 올해 기업들의 실적이 나빠진 데다 내년 경기전망도 여전히 불투명한 점을 고려할 때 임원들의 물갈이 폭은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시장 점유율이 경쟁사보다 훨씬 큰 폭으로 떨어진 기업의 경영진과 납품과정의 비리설 등에 연루된 임원들에 대한 문책설도 나돈다.
이에 따라 기존 임원은 물론 승진 대상에 올라 있는 고참 부장들이 인사의 폭과 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요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도 재신임의 관건인 주가와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한편 재계의 ‘우울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올해에는 거의 모든 기업이 별도 성과급을 지급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적 따라 명암 엇갈려〓탈락대상에 오른 일부 임원에게 이미 ‘짐을 싸라’는 통보가 전해지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재계 분위기가 썰렁해지고 있다.
올해 초 사장단 승진 14명과 임원승진 346명 등 사상 최대의 승진잔치를 벌인 삼성의 경우 올해는 반도체 불황으로 순이익이 크게 줄어 승진 폭도 크게 축소될 전망이다.
특히 주력사인 삼성전자 등은 그룹 차원에서 감사를 받은 상태라 문책을 받을 임원이 적지 않고 일부 계열사는 교체 폭이 전체 임원의 30% 선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의 부진을 메우는 데 기여한 삼성전자의 정보통신 부문 △작년 못지않은 이익을 내며 선전한 삼성SDI △대과 없이 시장선두를 유지한 금융계열사 등은 비교적 ‘따뜻한 겨울’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LG는 구본무(具本茂) 회장이 ‘강한 성과주의’를 강조한 점에 비춰 올해 경영실적이 임원 인사의 최대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승진규모가 올해 130명보다는 줄어들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감안해 ‘중국통(通)’ 등이 중용될 전망.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들의 경영실적이 창사 이래 최고인 점을 고려할 때 승진 폭이 타 그룹에 비해 가장 클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 있다.
현대차는 올 임원인사의 방향을 △영업(수출 및 내수) △기술개발(R&D) △현장관리 등 3대 분야를 중시한다는 쪽으로 정했다.
현대차 고위관계자는 “임원인사의 시기와 폭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정몽구(鄭夢九) 회장이 평소 강조한 대로 영업과 기술개발, 현장관리 부문이 배려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SK는 지난해 경영진 세대교체가 상당부분 이뤄진 만큼 사장단 교체폭은 크지 않고 오너와 전문경영인, 신 구세대간 조합을 중시하는 인사원칙이 올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 최태원(崔泰源) SK㈜회장이 그룹회장으로 올라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손길승(孫吉丞) 회장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 현재로서는 훨씬 우세하다.
포항제철은 올해 철강경기가 20년 이래 최악의 상황인 만큼 내년에도 긴축경영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어서 임원 승진은 소폭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장 차장 등 중간간부의 인사적체가 심각한 점을 고려해 이들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승진기회를 준다는 방침.
▽인사시기는 언제?〓삼성 현대차 SK 등은 주총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가급적 임원인사를 연말에 단행할 계획이다. 인사를 내년 초로 미루면 새해 사업계획을 짜는 데 적잖은 차질이 빚어지는 데다 가급적 조기에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기 때문.
삼성은 이달 말부터 다음달 초 사이에 각 계열사의 실적을 잠정 집계해 CEO와 임원에 대한 인사고과를 매긴 뒤 이를 토대로 12월 중순경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부 시민단체가 주주총회 전에 경영진을 ‘낙점’하는 것에 반발할 가능성이 있어 최종적인 시기 결정은 아직 변수로 남아 있다.
현대차 그룹은 매 연말에 임원인사를 실시해온 전례에 따라 올해에도 연말에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SK는 아직 인사시기를 확정짓지는 않았으나 예년처럼 연말에 실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현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고 있는 사장단 CEO 세미나가 23일 끝나는 대로 인사윤곽이 드러날 전망.
금호는 인사시기와 폭을 결정하지 못했고 한화는 10월초에 임원인사를 마무리지었다.
다만 LG는 올해 3월 주총을 거쳐 임원인사를 실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주총이 끝난 뒤 계열사별로 임원인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포철 한진 두산 롯데 등도 내년 2∼3월 주주총회를 전후해 인사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박원재·김동원·최영해·김태한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