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20년째 잡화점을 하고 있다는 홍상우씨(55)는 “90년대 초반과 외환위기 직후 환율이 껑충 뛰었을 때는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로 길거리가 가득 차 떠밀려 다니다시피 했다”며 “지금은 러시아인 손님이 하루 종일 5명도 안돼 사실상 개점휴업”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에서 가장 큰 러시아 전문 수출업체 가운데 하나인 에스키모 무역의 손석주 과장은“재작년만 해도 100개가 넘는 러시아 전문 무역회사가 부산지역에서 활동했지만 지금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전멸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나마 괜찮다는 우리 회사도 올해 매출이 500만달러 정도로 재작년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거래 품목도 의류, 신발, 모자, 라면, 초코파이에서 칫솔, 치약까지 거의 모든 생필품을 망라했지만 이제는 가죽옷, 간장, 마요네즈 등 몇 가지밖에 안 남았다.
‘첼나키’라 불리는 러시아 보따리 무역상들이 한국을 찾기 시작한 것은 88서울올림픽 직후. 92년 한-러 수교 후 급속히 늘어 94년에 15만명, 95년에는 20만명까지 입국했다. 그러나 지난해 입국자는 5만6780명으로 한창 때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이나마도 러시아 선박의 선원, 매춘을 위해 입국하는 여성들을 제외하면 실제 ‘첼나키’는 10분의 1도 안 된다는 게 상인들의 추정.
이처럼 러시아 보따리상들이 한국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은 ‘차이나(중국) 쇼크’와 환율 때문. 중국의 값싼 복제품이 판치면서 러시아 상인들이 한국 대신 톈진(天津) 등 중국 공장지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곳에서 버젓이 ‘Made In Korea’ 라벨이 붙은 값싼 중국산 모조품들을 사가고 있다는 것.
또 98년 8월 모라토리엄 선언 후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해 까다로워진 러시아 당국의 출국심사와 러시아 여성의 불법취업을 막기 위해 한층 엄격해진 한국측 입국 및 비자연장 심사도 영향을 미쳤다.
부산지역 상인들은 “중국 이외에 의류 등 주요 품목들이 서울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서울로 가는 약은 러시아 상인들도 많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대문도 예전 같지 않기는 마찬가지.
무역협회가 99년 동대문에 설치한 외국인 구매 안내소를 찾는 러시아인 수치가 단적인 예다. 올 들어 10월 말까지 이곳을 찾은 러시아인은 3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9명에 비해서도 70.6%나 줄었다.
러시아 보따리상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명소’로 한때 이들의 집결지이기도 했던 을지로 6가의 대화호텔도 지난달 말 쇼핑몰로 재개발하기 위해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만난 러시아 여성 보따리상 올린(32)은 “한국이 이번으로 네 번째인데 해가 갈수록 사갈 물건이 없다”며 “내년부터는 중국으로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김광현기자>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