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기업 없다…세계 50위내 한곳도 못올라

  • 입력 2002년 1월 3일 17시 58분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의 일부 임직원이 협력업체로부터 각종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아온 사실이 회사측 감사 결과 밝혀지자 재계 일각에서는 다소 색다른 반응이 나왔다. 한 경쟁그룹 임원은 “그나마 깨끗하다고 정평이 난 삼성이 이 정도면 다른 대기업은 오죽하겠느냐”며 “남의 얘기 같지 않다”고 혀를 찼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순위기업
1제너럴일렉트릭(미국)
2마이크로소프트(미국)
3IBM(미국)
4소니(일본)
5코카콜라(미국)
6도요타자동차(일본)
7노키아(핀란드)
8월마트(미국)
9인텔(미국)
10씨티그룹(미국)

삼성전자의 사례를 보면 ‘한국형 기업 먹이사슬’ 구조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여실히 드러난다. 과장 등 실무자급 직원들이 협력업체의 주식을 상납 받았고 개인 치료비와 술값까지 부담시켰다. 심지어 같은 그룹 계열사간에도 업무상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향응과 골프 접대가 이뤄졌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원칙과 투명성을 강조하지만 어느 분야보다 공정해야할 비즈니스 현장에서 페어플레이의 정신은 여전히 무시되고 있다. 이른바 ‘갑을(甲乙) 관계’로 요약되는 부패 고리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발주업체와 납품업체를 견고하게 얽어매고 있기 때문이다.

도장(칠) 전문업체인 A사는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공사를 마쳤지만 대금 3억7000만원을 반년이 넘도록 못 받고 있다. 자금 압박이 심각하지만 다른 공사를 계속 따내야할 처지여서 이의제기도 못한 채 속만 끓인다.

B사장은 “현장소장이 높은 곳에 잘 보여야 한다며 ‘인사비’를 요구한 적도 여러 번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사비를 떼먹거나 깎는 관행은 부실공사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신세계백화점 구학서(具學書) 사장은 유통업계의 고질인 납품비리를 없애기 위해 향응과 금품 수수를 금지하고 계약서상의 갑과 을이라는 표현도 구매자와 공급자로 고쳤다. 하지만 처음엔 납품업체들이 이 뜻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이익을 많이 내는 대기업은 있어도 ‘존경받는(admired) 기업’이 드문 것은 기업경영 현장에서 페어플레이가 실종된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1위, 일본의 소니가 4위에 올랐지만 한국은 50위 안에 단 한 기업도 들지 못했다. 아시아에서 50위 안에 포함된 업체는 일본 3곳과 싱가포르 한 곳뿐.

고려대 어윤대(魚允大) 교수는 “규칙을 어기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적당히 눈감아주는 게 미덕으로 간주되면서 페어플레이가 자리를 못 잡은 것”이라며 “윤리경영을 잘하는 기업일수록 경영성과가 좋고 주가도 더 많이 오른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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