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허승호/조급증, 협상 망치는 길

  • 입력 2002년 1월 13일 17시 39분


하이닉스반도체 매각협상이 최종 가격절충 단계에 접어들었다. 최근 국제 반도체가격이 오름세를 타면서 협상여건이 우리 쪽에 유리하게 풀리고 있다고 한다.

현대투자신탁의 매각협상도 조만간 타결될 전망. 대우자동차는 내달 초 열리는 GM 이사회에서 인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이 해결되면 그동안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던 기업구조조정의 주요 걸림돌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가 잠시 되돌아봐야 할 것이 한두 가지 있다.

우리 사회에는 협상이 타결되기 전에는 ‘왜 빨리 성사시키지 못하느냐’며 다그치는 여론이 있다. 협상이 결렬되면 “저 사람이 협상을 망쳤다”며 책임자를 매장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턱없는 요구에 끌려다니는 경우도 있다.

현대투신 협상관계자는 최근 “AIG그룹에 팔고 싶지 않은 생각도 있지만 그럴 경우 구조조정 퇴색으로 몰아갈 여론이 부담스럽다. 솔직히 딜(deal)을 깨기가 무섭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협상원칙을 새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시한에 얽매이지 말고 차분히, 그리고 당당히 처신하라. 투명하고 올바로 처리한다면 국민은 좀더 기다릴 수 있다”며 협상담당자들을 격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타결이 이뤄진 뒤 툭하면 벌어지는 헐값매각 시비다.

협상에는 반드시 상대가 있다. 아예 속은 것이 아니라면 협상결과는 쌍방이 처한 조건과 협상력에 따라 결정된다. 헐값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매우 찾기 힘들다.

금융감독위원회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조기타결에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니 성에 차지 않는 협상결과가 나오기 쉽고 결국 헐값매각 시비로 번지는 것이 아닐까.”

이와 관련해 좋은 사례가 있다. 제일은행이다.

서둘러 팔려 하다 보니 추후 발생하는 손실까지 매각자가 책임지는 풋백 옵션을 수용했고 이는 그 후 벌어진 모든 매각협상에서 우리에게 불리한 선례(先例)로 인용되어 왔다. 국제 인수합병(M&A)시장에서는 마치 ‘한국 기업을 사려면 으레 풋백 옵션을 요구할 수 있다’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각종 협상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아 온 것이다.

하이닉스 현대투신 대우차 문제는 마무리 단계에 왔다지만 서울은행과 대한생명의 매각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현대투신 등의 타결 결과는 다시 선례가 되어 향후 진행될 제2의 현대투신, 제3의 하이닉스의 매각협상 구도를 좌우할 것이다.

이번 주쯤 윤곽이 드러날 하이닉스 등의 타결내용에 특히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허승호 경제부 차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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