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삼성그룹 임원 인사의 특징은 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계열사 경영진이 그룹 전체로 6조원 이상의 흑자를 내며 ‘선방(善防)’한 데 대한 재신임의 성격과 함께 경영환경이 여전히 불투명한 점을 고려해 그룹 내 세대교체의 속도를 조절했다는 의미다.
▽사장단 유임의 의미〓삼성이 2개 계열사를 빼고 사장단을 전원 유임키로 한 것은 국내외 경영여건이 급변할 것에 대비해 내실을 다지면서 수익성 위주의 안정적인 경영에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삼성 측은 “2년 연속 대규모 흑자를 낸 것은 기존 경영진이 회사의 수익구조를 탄탄하게 갖추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라며 “사장단이 재작년에 21명, 작년에 14명이나 승진하거나 바뀐 바 있어 당분간 경영라인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사장단 유임방침을 일찌감치 밝힌 것은 주주총회가 열리는 3월까지 사장단 인사가 미뤄지면 새해 업무계획을 확정짓는 데 적잖은 혼선이 빚어질 것이라는 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후문.
이와 함께 삼성이 계열사 사장단을 대폭 바꿀 것이라는 관측이 한때 재계에 강하게 나돈 것이 오히려 기존 경영진의 유임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주력 계열사의 경영진 교체 여부와 함께 관심을 모았던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李在鎔) 삼성전자 상무보의 거취도 ‘현직유지’로 결론났다.
이재용씨를 이번에 승진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그룹 수뇌부가 ‘인적 쇄신을 통한 변화’보다는 경영의 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나타내는 대목. 삼성 관계자는 “이 상무보도 자신의 거취에 그룹 안팎의 관심이 쏠리자 ‘경영수업에 충실하면서 정상적인 승진 경로를 밟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의 임원인사 방향은 다음달부터 임원인사에 나설 LG SK 등 다른 대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눈길 끄는 승진자들〓삼성네트웍스 사장에 내정된 삼성SDS 박양규(朴亮圭·53) 상무는 3단계를 뛰어넘는 파격 승진이라는 점에서 최대의 화제인물로 떠올랐다. 진주고, 부산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74년 삼성에 입사한 박 상무는 그동안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영업쪽 경험도 쌓았다. 삼성 측은 종합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특성을 감안해 이 분야 전문가인 박 상무를 발탁했다고 밝혔다.
삼성SDI 심임수(沈任洙) 상무는 LCD 사업팀장을 맡아 회사 총이익의 30%에 해당하는 영업이익을 올린 성과로 승진 1년 만에 다시 전무로 승진했다.
삼성전자의 상무보로 선임된 영국인 데이비드 스틸은 삼성그룹의 첫 외국인 정규임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MIT) 물리학 박사와 시카고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인 그는 삼성 미래전략그룹에 입사한 뒤 3년 동안 성과평가에서 외국인으로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