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계의 해묵은 논쟁이 연초부터 다시 불붙고 있다.
LG전자 삼성전자 등이 새해 유통전략에서 대리점체제를 강화하고 있어 구(舊)유통과 신(新)유통 사이에 한 판 승부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신유통’으로 불리는 양판점 할인점 인터넷쇼핑몰의 기세가 지금처럼 이어질지, 전자업체에서 관리하는 대리점 전략점이 득세하게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대리점, 부활의 노래?〓LG전자는 최근 영업정책 발표회에서 “성장하는 대리점을 집중 육성하고 매장의 대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인덕 LG전자 한국영업 경영전략팀 과장은 “전자업체가 신유통에 들이는 비용과 대리점이나 전문점(하이프라자)을 관리하는데 드는 비용이 비슷해 후자를 강화하기로 방향을 정했다”고 말했다.
22일 영업정책을 발표할 삼성전자도 비슷하다. 김한규 국내영업사업부 마케팅팀 과장은 “매장을 대형화해서 가전제품뿐만 아니라 컴퓨터(PC)까지 원스톱 쇼핑을 할 수 있도록 대리점과 전문점(리빙프라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230개에 이르는 리빙프라자를 올해중 모두 서비스망과 금융망이 합쳐진 원스톱매장으로 변신시키고 70평이상인 대리점에도 서비스센터를 갖추는 한편 ‘대리점 체제의 2,3세 경영’도 지원할 계획이다.
▽이유는 무엇인가〓주요 전자업체가 이처럼 대리점망을 강화하는 이유는 올해가 유통업계와 전자업계의 승부를 가늠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 업계 관계자들은 “그동안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제조업체로서는 판촉비 장려금 수수료인하 등으로 손해는 손해대로 보면서 주도권도 잃는 기형구조가 됐다”며 “올해가 아니면 흐름을 뒤집을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전자업계의 입장선회 배경에는 최근 하이마트의 분쟁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 전자랜드21과 함께 대표적 양판점으로 꼽히는 하이마트는 그동안 가전회사들의 제품을 13∼28%의 마진율로 납품받아 싼 값에 많은 선택권을 주는 전략으로 급속히 세(勢)를 확장해왔다.
그러나 채권이행을 둘러싸고 대우전자와 소송까지 벌이면서 하이마트의 판매력은 다소 주춤한 상태. 전자업체는 하이마트가 흔들리는 때를 잡아 대리점 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것.
디지털 가전의 확장도 이유의 하나. 홈네트워킹 기술을 갖춘 가전제품은 여러 대가 한번에 설치돼야하는데 양판점에서는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변수는〓대우전자의 행보와 일본 유통전문점의 진출여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국내 영업판로의 대부분이었던 하이마트망을 잃은 대우전자는 신입사원 확충으로 영업망 재구축에 나서는 한편 전자랜드21이나 할인점, 백화점 영업을 강화해 하이마트의 공백을 메울 예정이다. 대리점이 아닌 새로운 유통망을 개발하려는 대우전자가 새 주인을 맞아 승부를 걸 경우 삼성 LG의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 일본 가전 양판점이 한국에 진출할 경우 대리점과 양판점 사이의 힘의 균형은 양판점쪽으로 쏠릴 수도 있다.
여러 제조업체의 제품을 비교해서 살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는 양판점의 매력이 전자업체의 대리점망 강화로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