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 한갑의 과세전 공장도가는 293원. 3.0배의 세금과 준조세가 붙어 소매상으로 넘어간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맥주의 주세율은 100%로 배와 배꼽 크기가 같은 셈.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을 실감케 하는 사례다. 자가용운전자 애연가 애주가 골프애호가 등은 세금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휘발유 승용차 담배 술 골프장 등은 세율도 높고 부과되는 세금이나 준조세의 종류가 너무 많아 ‘세금백화점’이라고 불릴 정도. 이 때문에 관련 업계는 세금을 줄여달라는 목소리를 최근 높이고 있다.
▽“세금을 줄여달라”〓최근 주유소들은 휘발유세 인하 캠페인에 적극 나섰다. 여러 서울 시내 주유소가 ‘귀하가 사용하는 휘발유 가격의 70%는 세금’이라는 안내문을 내붙였다. 이를 통해 ‘국제유가가 떨어져도 소비자가격은 큰 변화가 없다’는 비판도 잠재우면서 세금 인하 여론도 만들어가고 있는 것.
한국골프장사업협회는 “유흥업소 특별소비세도 내리는 마당에 골프장 특소세는 왜 못내리느냐”며 세율 인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한달삼 골프장사업협회장은 “한국인들이 작년 한해 동안 해외에서 골프를 치기 위해 쓴 직간접 경비가 1조원에 이를 것”이라며 “세금을 낮춰 한국 골프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애연가들 사이에서는 2월부터 건강부담금을 인상키로 한 조치를 놓고 “우리가 봉이냐”는 불평이 터져나오고 있다.
자동차업계와 주류업계는 공개적으로 세율인하 등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세금부담이 과중하다는 불만은 여전히 갖고 있다.
▽과연 얼마나 되기에〓‘세금백화점’ 5인방 가운데 세율이 가장 높은 것은 휘발유. 과세전 ℓ당 공장도가격은 271원이지만 관세 수입부과금 부가가치세 교통세 교육세 주행세 등 원가의 3.2배인 869원의 세금이 붙는다. ℓ당 소비자가격이 1235원이라고 치면 유통단계에서 붙는 부가세를 포함해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71%에 이른다.
휘발유 다음은 담배.
디스 1갑의 과세전 공장도가는 293원이다. 여기에 부가세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건강부담금 폐기물부담금 등 3.0배의 세금과 준조세가 붙어 소매상으로 넘어간다. 소비자가격에서 세금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68%가량. 더구나 2월부터 담배 한갑당 건강부담금이 2원에서 150원으로 껑충 뛰기 때문에 애연가들의 부담은 더 늘어날 전망.
술 가운데서는 맥주의 세율이 가장 높다. 맥주의 주세율은 ‘술 반 세금 반’인 100%. 소주와 위스키의 주세율은 72%다.
500㎖ 맥주 한병의 세후 공장도 가격은 957원이지만 세전 가격은 378원에 불과하다. 유통가격을 1500원이라고 할 때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2% 정도.
맥주 애호가들은 비싼 고급 위스키보다 많은 세금을 낸다는 것이 억울하겠지만 정부가 유럽연합(EU)과의 위스키 주세분쟁에서 99년 1월 패소, 위스키는 소주와 똑같이 대접해야 하는 사연이 있다.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1310만여원짜리 EF쏘나타 신차구입자는 취득 단계에서 특소세 교육세 부가세 취득세 등록세 등 351만여원(지하철공채구입 포함), 보유 단계에서 자동차세 교육세 등 52만여원을 내고, 휘발유를 소비하면서 연간 118만원 안팎의 세금을 낸다.
차종별 신차구입자의 1년간 세금 등 총부담 추산액은 △EF쏘나타2.0이 521만여원 △마티즈가 147만여원 △아반떼XD 1.5가 320만여원 △그랜저XG 2.5가 881만여원 △체어맨 3.2가 1683만여원 △에쿠스 4.5가 2227만여원 등이다.
골프장은 주말 입장료를 14만원이라고 할 때 25%인 3만4654원이 세금 또는 부담금이다. 휘발유 등에 비해서는 세율이 낮아보이지만 골프장 건설과 운영에 대한 중과세를 감안하면 실질적인 부담률은 훨씬 높다. 골프장사업협회는 골프장의 현금매출액 대비 세금비율이 47%로 일반 서비스업의 0.5%에 비해 90배가 넘는다고 주장했다.
▽“못 줄인다”〓정부는 이들 품목의 세부담이 많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단기적으로 세율을 내리지는 않을 방침.
재경부 윤영선 소비세제과장은 “세율을 낮춰 담배와 술 소비가 늘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면서 “휘발유도 세율을 낮추면 교통난이 심화하고 에너지 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윤 과장은 “휘발유 담배 골프장 등에 대한 세율을 내리면 대신 다른 품목에 대한 세율을 높여야하기 때문에 이들 품목의 세율을 낮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동차와 술에 대한 세금은 계속 줄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과장은 “업계에서는 세율을 낮추면 소비자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하지만 수요보다 공급이 많을 때는 소비자가 전혀 혜택을 못보는 사례가 많다”고 강조했다.
조세연구원 성명재 연구위원도 “술 담배 휘발유 등에 ‘죄악세’ 성격의 높은 세금을 메기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