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들의 벤치마킹 1호…GE의 人材사관학교 크로톤빌

  • 입력 2002년 1월 17일 14시 40분


2월 중, 국민은행 김정태행장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목적지는 미국 뉴욕주 오시닝에 있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의 크로톤빌 연수원.

90년대초반 이후 삼성, LG,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은 크로톤빌을 벤치마킹해 왔다. 최근들어 크로톤빌로 쏠리는 관심은 ‘어떻게 하면 우수한 인재를 키워낼 수 있나’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1981년부터 20년간 GE의 CEO를 맡았던 잭 웰치는 GE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재개발회사”라고 자부해 왔다. 크로톤빌 연수원은 웰치회장이 구축한 인재개발시스템의 핵.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통합 이후 “인재를 기르는 일이 초미의 과제”라고 강조해온 김행장으로서는 크로톤빌 행이 당연한 행보다.

▽잭 웰치의 패러다임 ‘생존에서 성장으로’▽

1980년대 미국 CEO의 양대 신화는 크라이슬러의 리 아이아코카와 GE의 잭 웰치였다. 그러나 아이아코카는 웰치처럼 장수하지 못했다.

“둘 다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넘기는데 능하다. 그러나 아이아코카가 기업이 생존하게는 할 수 있어도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라는 비전은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웰치는 언제나 ‘성장’이 구조조정의 이유였다. ”(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웰치가 간부사원들의 휴양지로 전락한 크로톤빌 연수원 재건에 나섰을 때 미국 재계인사들은 ‘GE의 패러독스’라며 비웃었다. 구조조정 때문에 공장을 매각하면서 ‘한가한’ 연수시설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웰치는 단호했다. 83년 크로톤빌 신축공사를 위한 4600만달러짜리 예산안에 사인을 하며 그는 투자를 얼마나 오래 회수할 수 있겠냐는 항목에 ‘Infinite(무한)’라고 써 넣었다.

▽연수원이 아니라 리더십개발센터▽

크로톤빌에 대한 GE의 공식명칭은 리더십개발센터(LDC·Leadership Development Center)다. 일반적인 직능연수가 아니라 회계 리더십, 마케팅 리더십을 교육한다. 변화와 개혁을 이끌 리더를 양성한다는 것.

크로톤빌은 사내연수기관이지만 일정 직급 이상이라는 것만으로 연수생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세션(session) C’라는 GE 특유의 인사조직평가를 통해 ‘가능성이 있다’고 판별된 인물만이 대상자다. 때문에 선발 자체가 ‘인정받았다’는 징표.

크로톤빌의 교육 중 특히 리더십에 초점을 맞춘 과정은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EDC(Executive Development Course), 그 아래 임원급의 BMC(Business Management Course) 그리고 부장 이사등 중간관리자가 대상인 MDC(Management Development Course)다. EDC는 1년에 한번, BMC는 1년에 3회, MDC는 4회 꼴로 진행된다. 특히 미래의 CEO가 배출될 EDC의 경우 30∼35명에 이르는 대상자를 잭 웰치 회장이 한사람 한사람 면밀히 검토해 입소를 결정했다.

크로톤빌의 리더십 교육은 각각의 단계가 하나의 학위와 같다. 한번 MDC나 BMC를 거친 사람은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하지 않고 상위 단계로 올라가거나 탈락한다.

▽현장으로 뛰어들어라▽

81년 웰치회장 부임 전까지 크로톤빌은 저명 교수들을 데려다 강의를 듣는 ‘우아한’ 연수원이었다. 그러나 웰치가 크로톤빌의 ‘혁신’을 위해 기용한 미시간대 노엘 티키교수는 ‘현장학습(Action Learning)’이란 개념으로 교육내용을 완전히 바꾸었다.

90년대 초 EDC과정을 이수한 강석진 한국 GE사장의 경험담.

“당시 회사의 목표는 세계화의 첫 단계로 유럽시장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회사는 아예 교육장소를 크로톤빌에서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으로 옮겨 연수생들을 불렀다. 연수생이었던 30여명의 간부급 사원은 6명씩 한조로 나뉘어 과제를 맡았다. 당시 GE 각 사업부가 유럽시장 공략과정에서 맞닥뜨린 애로사항들이 우리에게 던져졌다.

연수생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달. 해결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팀원들은 현장을 찾아가고 고객을 만나고 경쟁회사의 자료도 뒤적였다. 부서장부터 하급직원까지 만나며 고충을 들었고 외부 전문가의 도움도 얻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자동차를 몰고 전 유럽을 헤맸다. 마침내 리포트를 만들어 웰치 회장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나자 회사는 즉시 우리 팀의 제안을 회사 정책으로 채택했다.”

EDC, BMC 등의 리포트 프리젠테이션에는 언제나 웰치 회장이 직접 참석했다. 연수생들이 내놓은 제안을 듣고 현장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연수생들에게 던져지는 과제는 늘 회사가 맞닥뜨린 최악의 난제들. 그들의 제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연수과정을 지켜보며 차세대 리더를 발탁해 냈다. 교육이 곧 경영과정이자 인재충원의 풀이 되는 시스템이다.

▽Top 20%, Bottom 20%▽

크로톤빌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 답은 GE의 ‘20:60:20’의 인사평가방법으로 설명된다.

거칠게 설명하면 GE의 인사평가는 현재의 업무능력과 미래 성장능력의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표 참조) 어떤 부서에서든 현재 업무추진능력이 뛰어나고 장래성도 있는 상위그룹이 20%, 둘 다 처지는 하위 그룹이 역시 20%를 차지하게 된다. 나머지 60%는 현재를 유지하는 바탕그룹으로서 상위 또는 하위 20%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는 ‘유동적인 직원’으로 분류된다.

“상위 20%안에서 크로톤빌 연수생들이 선발된다. 매년 ‘세션 C’를 진행하지만 한번 상위 20%그룹에 든 사람이 하위 20%로 처지는 일은 단언컨대 없었다.”(강석진 사장)

‘세션 C’는 영업실적과 리더십을 고르게 평가한다. 특히 리더십의 경우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인재를 얼마나 잘 키우는가가 가장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나만 잘 되겠다’는 유아독존형 리더는 살아남지 못한다.

▽“자기주장을 하라”▽

웰치 전 회장은 자신의 카리스마에 대항해 끝까지 의견을 개진하는 부하직원들을 늘 높이 샀다. 회장 자신이 가치를 높게 부여한 일일수록 더 많이 캐묻고 상대를 공격했다. ‘나를 이겨낼 정도라면 그 일에 대한 비전이나 헌신성이 그만큼 단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던 것.

웰치 전 회장의 수평적 의사소통 노력은 GE 내부에서 ‘워크아웃(Work-Out)’이라는 형태로 공유됐다. 누구든 직위에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하고, 성취한 만큼 보상 받는 시스템을 만든 것.

“한국기업이 크로톤빌을 제대로 배운다면 그 진정한 의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업문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상명하복 시스템에서 리더(CEO)들은, 소유주의 눈치를 보는 ‘가신(家臣)’이자 아랫사람에게는 독불장군이었다. GE형의 시스템에서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조직원 모두의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열린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다”(강석진 사장)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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