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새로운 인수의향자가 나타났고 윌버로스도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협상을 계속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매각 자체가 무산된 것은 아니다”며 애써 자신감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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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G측과의 협상 결렬은 정부가 ‘더 이상 한국 자산을 헐값으로 팔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다. 다행히 증시도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금시장의 불안요인인 현대투신 문제를 오래도록 해결하지 않아도 시장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외국의 일부 언론이 협상 결렬을 ‘한국의 개혁의지 후퇴’로 해석하는 것도 부담이다.
▽왜 결렬됐나〓밖으로 드러난 협상 결렬 이유는 두 가지. 우선 계약서에 표시하지 않은 부실이 드러날 경우 책임을 누가 얼마만큼 질 것인지를 규정하는 손실보전 조항에 대해 양측이 입장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AIG측은 한국정부가 100% 보전해줄 것을 요구했고 정부는 현대투신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지분(45%)만큼만 손실을 보장할 것을 주장했다. 한국정부가 현대투신의 주인도 아닌데 정부더러 100% 손실보전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는 것.
더욱이 정부는 AIG컨소시엄측이 현대증권의 주식을 훨씬 싼 7000원에 매입할 수 있도록 한 조항 때문에 이미 헐값 매각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정부의 협상 담당자들은 100% 손실보전 조항까지 받아들일 경우 야당이나 여론으로부터 ‘잘못된 협상’이라는 비난을 받고 이는 잘못된 협상에 대한 책임론으로 이어질 것임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
또 최근 한국의 구조조정 노력을 외국에서 일정부분 성과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AIG컨소시엄과의 협상 결렬을 ‘한국의 개혁의지 후퇴’로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계에서는 현대투신의 주식 감자문제도 협상 타결의 중대한 장애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AIG가 인수하면서 현대투신을 인수하면 주식에 대한 감자가 불가피하다. 이때 소액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은데 사법부가 소액주주의 손을 들어줄 경우 그에 따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는 문제도 난제라는 것.
▽새로운 협상 전망〓정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 협상 파트너 후보는 3곳. 기존의 협상 파트너 중 한 곳이었던 윌버로스그룹과 새로 인수 의사를 밝힌 미국의 금융그룹 2곳이다. 정부는 인수의사를 밝힌 기업이 “유수 금융그룹 중 하나이며 단순한 투자펀드는 아니다”고 밝혔다.
매각협상을 담당한 이우철(李佑喆) 금융감독위 감독정책2국장은 “2년간의 협상과정에서 이미 현대 3사에 대한 실사결과가 나와 있고 협상과정에서 광범위한 정보가 축적돼 있기 때문에 새 협상 파트너가 선정되면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계는 정부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투신권의 한 관계자는 “현대의 금융 3사 매각건이 ‘부실한 투신사를 매각하기 위해 우량한 현대증권 끼워팔기’라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어 외국회사의 처지에서 리스크를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다”며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잘못 없나〓협상이 일단 결렬됐다고 해서 단순히 협상 실패로 정부를 비난할 수는 없다. “무조건 외국에 저자세로 협상하지는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협상타결 의지가 없는 AIG측에 끌려다니며 2년여를 허송세월했고 자금시장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는 현대투신 문제를 남겨뒀다는 점에서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증시나 자금시장의 분위기가 언제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대투신 문제의 해결을 늦추다간 시장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향후 협상에서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