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맨’이 된 지 4년. 머리숱도 줄어가고, 적당히 배도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인 이름을 잘 외워 사내에서도 ‘귀재’로 통한다. 영국 옥스퍼드대(물리학), 미국 MIT대(물리학박사), 시카고대(경영학석사·MBA) 등 학력이 화려하다. 경영컨설팅사 매킨지,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 일본 통산성 등에서 쌓은 직업경력도 호화롭다.
경기 수원시의 사무실에서 벗어나 서울로 출장 나온 스틸 상무보를 만났다. 이 자리엔 삼성그룹 내 자체 컨설팅팀인 미래전략그룹의 서양인 직원 2명도 함께 했다.
-삼성을 직장으로 고른 이유는….
“떠오르는 아시아시장의 다이내믹한 경험을 원했다. 아시아 정상권인 삼성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는 97년 미래전략그룹에 참여했다. 이 조직은 지금까지 미국 유럽권 톱10 MBA 과정을 마친 ‘노랑 머리’ 컨설턴트 50여명이 거쳐간 곳. 지금도 30명 가까운 인력이 포진해 있다. 주요 해외영업 전략을 세우는 일을 맡는다. 2년 계약이 끝나면 업무능력이 인정될 경우 계열사로 전직을 권유받는다. 스틸 상무보는 99년 삼성전자로 옮겼다.
-미래전략그룹의 강점은….
“우리는 평사원부터 대표이사까지 ‘삼성 사람’을 자유롭게 만난다. 99년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동네시장을 돌아다니며 현지 소매상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와 전략에 반영했다. 하지만 외부 컨설턴트는 임원진과 딱딱한 미팅만 하다보면 현장 목소리에 소홀해질 수 있다. 또 삼성의 현실을 잘 모르고 너무나 박제화한 서구스타일 해법만 제시하는 측면이 강하다.”
-입사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삼성전자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외부 지적에 귀를 기울이는 곳’으로 달라진 것이 발전한 증거다.”
외국인에게 한국인 이름 석 자를 제대로 기억해 발음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는 한번 만난 직원들 이름을 줄줄 꿴다. 한국인 직원들이 부르는 별명은 그의 영어 이름대로 ‘쇠(steel)상무’.
-외국인 임원 선임의 의미는….
“이것은 ‘혁명’이 아니라 꾸준한 변화의 한 현상(evolution, not revolution)일 뿐이다.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어서 임원이 된 지 1주일이 지나도록 영국의 어머니께 승진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그는 “삼성의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에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취미는 친구를 초대해서 함께 식사하기. 호텔에 100여명의 한국 내 지인들을 초대해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는 배포를 과시하기도 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