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를 e메일로 보내기 위해 사진을 스캔받을 일이 많아졌지만 그때마다 후배사원인 강형근씨(27)를 찾는다. 이 과장에게 ‘너무도 엄청난 일’인 파워포인트로 문서를 작성하는 일도 후배들은 뚝딱뚝딱 잘 해낸다.
“한 번은 일요일이라 집에서 쉬고있는데 자료를 찾아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집에서 컴퓨터로 하면 될 일이지만 도저히 안되더라구요. 회사까지 나와서 서류파일 뒤져서 전화로 알려줬죠.”
그렇다고 그의 ‘디지털 마인드’가 비슷한 세대에서 뒤떨어진 편은 아니다. 새해를 맞아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걸기 힘들어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S그룹 계열사에 과장으로 있는 한 친구는 전화를 걸어와 “어떻게 이런 것도 하느냐”며 부러워했다.
이 과장은 자신이 사원이었을 때 ‘과장님’을 생각해보면 일방적인 지식의 전수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요즘에는 과장이란 자리가 후배에게 배우면서, 일은 가르쳐야 하는 묘한 위치인 것 같다. 후배를 야단치려다가도 ‘좀 있다가 부탁할 일이 있는데…’하는 생각이 들면 ‘핏대’가 오르던 마음이 가라앉기도 한다.
김성숙 대한투자신탁증권 경영지원실 과장(37)은 한때 회사 안에서 ‘컴퓨터를 좀 아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러나 요즘 후배들을 보면 자신이 ‘워드 세대’라면 후배들은 ‘인터넷 세대’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는 책을 보고 기술을 배우지만 후배들은 학생시절부터 컴퓨터와 놀며 공부했던 세대라 모든 것이 체화(體化)돼 있더라구요.”
인터넷 검색만 해도 김 과장은 회사안에서 연수과정을 통해 배웠다. 한 때는 제한된 시간안에 가장 빨리 정보를 찾는 인터넷 경시대회도 있었다. 거기서 상을 타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것도 우스운 이야기다.
김 과장은 동기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가 가끔 결의를 다져보기도 한다. ‘우리도 컴퓨터로 게임하고 인터넷 검색하는 모임이라도 한 번 만들어보자’고. 그러나 결의는 결의로 끝나고 쏟아지는 업무를 소화하느라 오늘도 종종 걸음만 칠 뿐이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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