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 출신으로 ‘벤처업계의 대부’로 불리던 이씨의 말은 한국경제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듯했다.
이 순간이 그의 인생에서나, 회사에나 ‘정점(頂點)’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 순간 몰락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1985년 초음파진단기 등 의료기기 전문 제조업체 메디슨을 설립한 이씨는 기술력과 마케팅수완을 발휘해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사업이 본궤도에 이른 90년대 후반 마침 벤처열풍이 불자 그와 메디슨은 벤처신화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인용됐다. 이씨는 초대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아 벤처 정책의 틀을 짜는 데 깊이 간여하기도 했다. 정부가 ‘벤처 인증제’라는 제도를 만들어 벤처 붐을 일으키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할 정도였다.
대기업의 대안(代案)을 지향한다면서 그는 대기업 방식을 닮아갔다. 본업인 초음파진단기 사업의 성공을 지렛대로 삼아 다른 사업으로 몸집을 불려나가는 문어발 확장을 해나갔다. 벤처업계의 ‘맏형’ 역할을 한다는 명분은 좋았지만 국내외 40여개사에 투자했다.
99년 순익 523억원의 실적은 한 번의 ‘바람’이었을 뿐 벤처열풍이 꺼지면서 그 같은 영화(榮華)는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려 버렸다.
한편 메디슨의 경영진은 회사가 부도나기 전에 갖고 있던 주식을 일부 팔아치운 것으로 밝혀졌다.
30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이민화씨는 부도나기 3개월 전인 작년 10월부터 12월까지 몇 차례에 걸쳐 모두 58만8720주의 메디슨 주식을 처분했다. 그는 주당 2380∼3003원에 주식을 장내에서 판 것으로 나타났다. 부도로 거래가 정지되기 전인 28일 메디슨의 주가는 2700원(종가 기준)이었다.
이에 따라 작년 9월 말 현재 4.63%(157만532주)이던 이씨의 지분은 ‘임원 및 주요주주 소유주식보고서’를 금융감독위원회와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올 1월10일에는 3.0%(98만1812주)로 줄었다.
또 이승우 메디슨 사장은 작년 12월24일 2만5000주를 주당 2355원에 팔아 지분이 1.18%로 줄어들었다. 박용헌 메디슨 전 상무는 작년 6월27일부터 9월8일 사이에 10만7247주를 처분했다.
김상철기자 sckim007@donga.com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이민화 메디슨 이사회 의장의 주식 처분 현황 | |
주식 처분일 | 판 주식 수(주) |
2001년 10월19일 | 177,490 |
10월25일 | 55,720 |
10월31일 | 23,000 |
11월 7일 | 62,500 |
11월15일 | 100,000 |
11월16일 | 80,000 |
11월26일 | 3,670 |
12월13일 | 50,000 |